
젊음은 아름다운 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런수런 소리를 내고, 새벽 기운이 뻗질러 생기가 넘치며, 고혹적인 향과 빛깔로 눈이 부시다. 하지만 제아무리 화사한 꽃이라도 언젠가는 시든다. 마찬가지로 젊음도 잠시 화려한 한때를 구가하고 나면 윤이 사라진다. 그래서 더욱 청춘은, 젊음은 아름답다. 가장 무상한 것이 가장 아름답고, 사멸을 연상하는 것 자체가 더욱더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영화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는 아름다운 ‘청춘별곡’이다. 힘겹지만 활력이 넘치고 시끌시끌하다. 웃음에 겨워 미칠 지경이다. 마음속에서 젊음의 순수가 다시 살아나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다.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손가락이 오글거리던 때가 있다. 그것이 미처 순수인지조차 모르며 꾸밈이 없던 때. 성적은 엉망진창, 사랑은 헛수고, 주머니는 무일푼, 그래도 친구가 있어 웃고 울며 어깨동무를 하던 시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해대는 것이 마냥 멋져 보였던 날들. 어찌 이 풋풋한 열정을 잊을 수 있겠는가.
장현상 감독은 유쾌하고 자연스럽게 청춘을 얘기한다. 청춘의 열정과 고민을 웃음으로 변용하고 치유한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아픈 상처로 기억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용렬한 허물을 드리우겠지만 그 시절의 힘겨움은 ‘청춘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말한다. 아파도, 힘들어도, 괴로워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장 감독은 이 요란한 청춘들의 난장 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자유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 영화를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학원과 학교만 오가면서 공부만 하며 보냈다. 선생님, 부모님, 어른들에게 속고 살았다.(웃음) 이 영화를 보면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즐겁게 보낼 수 있구나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현상 감독은 25살에 영화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를 만들었다. 완성도 높은 영화를 그 나이에 만들어서다. 영화는 혼자 하는 예술이 아니다. 여러 스텝들과 마음을 맞추는 것은 물론 영화 제작에 필요한 여러 일들을 꿰뚫고 있어야 가능하다. 20년 후가 무척 기대되는 감독이다.
“작업은 재밌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을 극복하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섭외하고, 장소를 구하고, 아는 분들의 폐를 끼치는 과정이 힘들다. 돈도 많이 들고 체력도 많이 소진된다. 배급까지 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왔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장 감독은 이 영화를 연출하기 전 단편영화 3편을 만들었다. <오! 나의 여신님>, <내 머릿속>, <마니또>다. <오! 나의 여신님>은 심리치료를 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다. <내 머리 속>은 영화의 구조를 실험해본 작품으로 현재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지만 회상 장면은 역순으로 진행된다. <마니또>는 그가 군대에 있을 때 만든 영화다.
장 감독은 <사돈의 팔촌>이라는 장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영화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겼다. 조금 더 이미지도 잘 써보고 싶고, 롱테이크로 배우의 연기도 살려보고 싶단다. 또 맘대로 되지 않는 현장 상황을 자기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바람도 있다. 더 좋은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역으로 이용하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다.
영화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는 픽션이지만 실재 이야기 같다. 담백하고 수식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젊은 지성들도 모두 거친 그 시절의 이야기. 하지만 어떤 부분은 좀 부족하고, 어떤 부분은 좀 과하게 느껴진다. 순전히 요즘 세대를 읽지 못하는 탓도 있다. 격세지감이랄까.
1980년대 고등학교에는 왕따가 없었다. 흙먼지가 풀풀 나는 폭행을 즐기는 학교 짱도 없었고 빵셔틀도, 화려한 파티도, 성인사이트를 운영할만한 능력도 없었다. 영화에서 보니 생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옛 시절의 향수를 부른 것은 확실하다. 공사장 혈투, 잔디밭 물총 싸움, 피시방 삥, 자취방 야설, 거리의 뜀박질, 광란의 파티, 해변의 사랑은 그 옛날 골방 아지트로, 만화책과 비디오로, 당구장과 시위대로, 삼양라면과 소주로, 젓가락 반주와 나팔바지로 치환됐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재밌게 놀았다. 더 짓궂고 야했으며, 성숙하고 철학적이었다. 가난해도 정이 넘쳤고 옳지 않은 일에는 힘을 보탤 줄 알았다. 체벌 또한 달게 받는 순진한 청춘들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선생님이 혼내거나 때리면 친구 대하듯 손으로 막고, 얼렁뚱땅 도망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뒤에서는 꼰대라고 놀려도 앞에서 함부로 대들지 못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변했는지 실감케 했다. 여러 세대들에게 요즘을 읽을 수 있는 공부가 되기 충분한 영화다. 또 이 영화는 모든 세대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조랑내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이 영화에서 교권이 상실된, 교실이 붕괴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교사는 큰 소리만 내고, 교실은 아수라장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웃는다.
“실제 학교의 모습과는 다르다. 영화에서처럼 선생님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선생님을 폭행하는 사건도 보도된 적이 있었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다는 선생님에게 도망가는 모습으로 자유를 표현했다. 일종의 저항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하늘이는 왕따이자 빵셔틀이다. 현실에서 이런 일을 당하는 학생들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하늘이는 아니다. 천연덕스럽게 대충 넘어간다. 대신 우유부단하고 바보스럽다. 힘이 없어서 두들겨 맞고, 매점에 심부름 가는 모습 때문이 아니다. 하늘이는 눈치를 보면서 힘 있는 친구에게 붙는다. 퀸카 아름이를 두고 펼쳐지는 민식과 명호의 싸움을 줄타기하며 오가는 모습은 영악하기까지 하다. 캐릭터만 보면 왕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늘이는 종종 있는 캐릭터다. 자신만의 세계와 재능이 있는 학생이지만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고 어울리지 못한다. 나중에는 자기만의 선택을 한다. 명호를 돕고 민식에게 할 말도 한다. 성장하면서 바뀌어가는 하늘이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가슴에 찡한 감동을 남겼다. 그 감동이라는 건 별 게 아니다. 주인공 하늘이는 왕따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찾은 뒤 여러 친구들과 함께 바다에 놀러 간다. 거기에서 ‘어쨌든 살아있기만 해도 기회는 찾아온다. 그리고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얘기한다. 겉으로는 여자 친구에 대한 로망처럼 읽힌다. 하지만 그 말은 우리네 인생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긍정의 눈빛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웃는 그들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청춘은 부모 세대가 얘기하는 좋은 대학과 직장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떤 식으로든 커다란 추억과 지혜는 줄 것이다.
영화 <네버다이 버터플라이>에서 아쉬운 장면은 모범생 문수연이다. 수연은 마지막 장면에 ‘문제아’라고 볼 수 있는 명호의 무리와 함께 해변에 앉아 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장 감독은 문수연이 하늘이를 도와주면서 명호의 무리와 친해지게 됐다고 말한다. 친구들 간에 마음의 벽이 사리지는 모습, 화합을 표현하고 싶었단다. 하지만 학교에는 공부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들이 많다. 장 감독이 문수연을 통해 입시 경쟁이 펼쳐지는 학교 얘기를 살짝 건드려 줬으면 어떠했을까 싶다. 그랬다면 해변에 앉아 있는 문수연의 모습은 설명이 불필요했을지 모른다.
알려진 것처럼 사회의 모순은 교육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순과 위선, 폭력과 물질주의가 난무한다. 어쩌면 하늘이도, 명호도, 치우도, 세진이도 모두 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방법은 사회적 병리현상과 교육환경,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고치는 것일 테다.
일면 이 영화는 공부 잘해서 일류 대학에 들어가면 출세가 보장된다고 여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명호와 한부모 밑에서 자라는 하늘이가 서로 친구가 되고, 세진의 허리에 새겨진 나비 모양의 문신을 통해 또 다른 희망을 은유하기도 한다. 게다가 장 감독은 무겁고 어둡게 묘사된 기존 학원물과는 다르게 학교 이야기를 하고 싶은 희구도 있었다.
“약자지만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하늘이가 버터플라이다. 세진의 나비문신은 농담, 속임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의견이 달랐다. 어떻든 관계없다. 영화를 보면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라는 자막이 계속 나온다. 이 영화만의 캐릭터를 주고 싶어서 넣었다.”
영화 <네버다이 버터플라이>를 보니 오늘이 불편하고 부끄럽다. 나이가 들수록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열정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느끼게 된다. 청춘의 초상은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치열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짐만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낭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삶을 버틸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지만 정작 일상은 돈 벌고 잘 사는 일에만 매몰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따뜻한 마음으로 남은 세월을 맞이해야겠다. 지금 이 시간 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 어리석고, 참혹했던 일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새살을 채우는 인생 여정을 준비해야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청춘의 추억을, 지금의 자신을, 미래의 사멸을 진지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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