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처럼 덩어리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는 철심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요동쳤다. 공간과 공간 사이가 만들어낸 조형미는 시간과 공간의 이음새를 파괴하는 미지의 힘으로 가득했다. 인간의 심장을 닮은 강렬한 이미지다.
덩어리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너른 상상의 세계를 보게 만들었다. 반골, 파괴, 변주, 혁명, 폭력, 생명, 괴물 등 여러 단어들도 떠오르게 했다. 특히 덩어리에서는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엿보여 감정이 북받쳐 왔다. 나는 덩어리 앞에서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작품 ‘절규’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았다.
박재연 작가는 이야기와 난제를 던지는 솜씨가 탁월한 작가 같다.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이 무척 궁금해진다. 고매하고 청아한 조형미만을 추구하는 조각은 좀 지친다.
박 작가는 탁월한 선전가는 아니지만 탁월한 전달자다. 그의 작품은 보기에 따라서 다른 생각을 끌어내고, 다른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이 선전이 되려면 좀 더 사실적인 형상, 직접적인 메시지여야겠지만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 작가마다 작품마다 다 자신의 몫이 있다.
막심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가 생각났다. 이 소설의 주인공 빠벨의 어머니는 러시아의 마지막 전제정치를 펼친 짜르 정부에 대항해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술주정뱅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억압을 받았지만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스스로 운동가의 길을 자처했다. 혁명을 향해 걸어가는 아들을 따라 모든 것을 내맡겼던 어머니. 박재연 작가의 작품에서 그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굳건한 용기가 보였다.
한편으로는 끝없이 쏟아지는 질문과 방황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교차됐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 혼돈의 시간을 겪는다.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좌절을 경험하게도 된다. 그럴 때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시류에 휩쓸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문제를 성찰하면서 새 살을 채우는 계기로 삼는 사람도 있다. 박 작가의 뭉클거리는 딱딱한 덩어리는 후자였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부단한 애를 쓰는 사람들, 뒤틀리고 꼬여가는 삶을 이겨내기 위한 요동의 넘실거림이었다.
여러 생각 끝에 덩어리는 다시 인간의 내면으로 향했다. 덩어리는 머리와 마음에서 꾸무럭꾸무럭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을 족집게처럼 잡아내 밖으로 표출했다.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종의 고민 같은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인간의 내면은 전쟁과 폭력, 이질적인 문화의 경계에서 추락하는 인류의 자화상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됐다. 의식의 흐름은 굉장히 느렸다. 성찰하는 대상 자체가 고통과 끈질긴 현실인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더 확장하면 거세게 몰아치는 자본주의와 그것에 대한 저항이 서로 부딪치는 것이 목격됐다. 흡사 전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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