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음식, 가전제품, 영생의 약속, 주식……. 앞에 열거한 단어들은 우리 사회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씩 이런 단어들이 외계의 언어처럼 낯설 때가 있다. 피로가 육체의 뿌리 끝까지 쌓이고 정신이 오락가락 혼란해질 때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는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냐 싶어 머리가 아파온다.
김정은 작가는 지독하게 괴롭고 낯섦이 밀려올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면서 기분을 유쾌하게 전환했다. 또 심각한 감정을 “희화화시켜 낄낄”거리며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변용했고, 그런 마음의 작용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았다.
땡땡이 내복을 입은 남자가 목욕탕에서 옷을 벗고, 팔이 여섯 개인 여자는 내장을 다 드러내 놓고 웃는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늑대가 들어가 있고, 하얀 줄을 그어 얼굴을 위장한 여자와 물속에 빠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키는 손, 그리고 음료를 입에 대고 흘리는 사람 등등이 줄줄이 전시장에 걸려있다.
조금만 삐딱하게 보면 괴기스럽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재밌고 유머러스하게 보인다. 그것은 파스텔톤 컬러와 밝고 힘 있는 붓터치, 자연스러운 표현법 때문이다. 그는 또 이미지마다 이야깃거리를 가득 담아 풍자적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 작가의 얼굴에서도 그림과 같은 유쾌함이 보였다면 지나칠까. 참으로 밝고 발랄한 작가였다. 김 작가의 반응이 궁금해 일부러 ‘그림 속에서 옷을 벗고 있는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인물들은 “자기도 있고, 요즘 사람들도 있다”며 마냥 웃어버렸다.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다.
김 작가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기억하고 상상한 장면들을 그리면서 마음의 찌꺼기를 정화했다. 또 “감각을 충족하는 흥미로운 형상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위로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마도 그가 화가가 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김 작가의 의도대로 그의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고 유쾌하게 해주었다. 멍하니 앉아 쓰디쓴 인생을 핥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학과 풍자를 통해 억지로라도 마음을 변화시키도록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런 노력이 일상화되고, 습관처럼 체득된다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긍정적인 작품이다.
반면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내면에 어떤 상처 같은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보이기도 해 마음이 짠해졌다. 서로 손가락질하는 이 세상에 서 있다 보면 마음이 몹시 우울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반응에 무뎌지는 것이지 마음을 할퀴는 상처가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 때 김정은 작가의 작품을 정다운 시선으로 보면 좋을 듯싶다. 시간이 된다면 자연과 함께 숨 쉬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는 것을 권한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기쁨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그저 쓰고 힘든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속절없이 가버리는 것이 세월인데 사람들 너무도 못됐다.
나는 인생의 기쁨이 현실을 살아가는데 연약한 감상을 선물한다고 해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얘기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인간의 가치와 품위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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