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통 초록빛이다. 풀과 나무들이 나비와 메뚜기, 화려한 꽃들과 어울려 신천지를 연출한다. 자연으로 시간의 영속성과 삶의 가치를 조명해 내는 것 같은 그림들.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한국화가 이해경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미래와 영원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닌지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아름답게 자연을 가꾸고, 자연과 함께 동화되는 삶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와 안식을 지켜주는 약속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전시장은 아름다웠다. 이해경 작가의 초록 자연에 빠져 한가롭게 걸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총천연색 자연이 펼쳐져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아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될 일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녹음이 번진 산과 들, 청자 백자와 같은 하늘, 울긋불긋 익어가는 꽃잎. 모두가 제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만 앞 다투는 일이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도 그러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어수선하고 어지럽게 흘러간다.
잔뜩 찌푸린 도시생활을 즐겁게 영위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니 너무도 단순하다.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이웃과 나누는 삶이다. 큰 열매, 큰 성과, 큰 보답에 매달리다 보면 사람의 마음은 협소하고 사나워진다. 이를 테면 스위스 알프스 산맥이나, 알래스카의 거대한 빙하,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미술관에서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가까운 곳에서 적은 비용과 부담 없는 시간으로 즐기는 여행 또한 행복하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해경 작가는 꽃과 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생명의 숭고함을 찬양한다. 눈에 띄지 않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표현해 낸 것을 보면 침이 꿀꺽 넘어간다. 그는 또 여러 요소들이 뒤엉키고 어우러지는 것을 포착해 화폭에 옮긴다. 혼자가 아닌 함께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두 눈으로 확인시킨다.
이 작가가 그린 꽃들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그 붉은 꽃을 사진으로 소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꽃, 흡사 동백꽃을 닮은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작가는 저 꽃과 풀을 그려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세필의 흔적 하나하나가 감동 그 자체다.
그림에서는 붓을 세워 정교하게 그린 티가 난다. 여러 색의 물감을 섞어 색을 만들고 은은하게 퍼지도록 표현한 면도 돋보인다. 물감이 물에 떨어져 퍼지듯 은근하게 채워진 배경 또한 압권이다. 화려한 꽃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농담으로 표현하면서 세세하게 화면으로 끄집어낸 솜씨, 그림 하나하나가 모두 조화롭고 균형이 잡혀 아름답다. 이런 그림 참으로 오랜만이다.
이해경 작가는 작품에 코끼리를 그려 넣었다. 풀과 나무보다 작은 코끼리들이 한가롭게 어울리는 모습이다. 코끼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육상 동물이다. 무게도 수 톤에 달한다. 매일 300kg 이상의 풀과 나뭇가지, 뿌리와 열매, 100리터의 물을 먹어야 산다. 그래서 하루에 18~20시간을 먹는 데 보내는 동물이다. 이러한 동물이 초록빛 화면에 작게 들어가 있으니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인도에 가면 유독 코끼리 조각상이 많다.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수많은 신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세 신은 가네샤, 락시미, 크리슈나다. 그중에서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신이 가네샤다. 가네샤는 지혜와 복을 상징하며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보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해경 작가의 작품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초록의 서정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았지만 왠지 모르게 드는 천상의 느낌. 이 작가는 초록서정을 우리 인간의 이상향으로 표현한 것 같다. 닿을 수 없이 깨끗하고 정갈한 곳의 풍경을.
삶에는 항상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쓸쓸함이 도사리고 있다. 거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듬으면서 한발 물러서고 싶지만 삶은 연습으로 사는 게 아니니 그럴 수도 없다. 자꾸 시간 가는 것에만 민감해진다. 한편으로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지 못한 게으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옹색함이 느껴져 울컥해지기도 한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말이다. 그럴 때는 가끔 첨예한 대립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떠할까. 예술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하고 사색해보는 시간.
이해경 작가는 꽃 그림 전문화가다. 그가 그려낸 꽃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영혼이나 요정이 꽃에 서려 있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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