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최인호 화가 - 미술이 우리 삶을 치유할 수 있다

이동권 2022. 10. 4. 10:50

최인호 화가


왜소하고 홀쭉하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서글퍼 보이는 인간이 서있다. 형체도 불분명하고, 양감도 없고, 표정도 굳어있다. 커다란 시련이나 허무에 빠진 사람처럼 감정도 메말라 보인다. 왠지 모르게 비극적이고 슬프다. 애잔함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밀려온다.

세상이 시끄럽다. 그렇다고 눈 감고, 귀 막은 채 살 수도 없는 노릇. 내 것, 네 것을 나누는 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라고 해도 세상이 너무도 시끄러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비극은 ‘돈’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최인호 작가는 이런 얘기를 않는다. 배금주의에 물들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순수한 영혼들과 마주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할 뿐이다.

최 작가의 작품에서는 국가와 인간의 폭력 앞에 아무런 저항도, 실존 자체도 느끼지 못한 채 수렁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또 탱크와 장갑차가 휩쓸고 지나간 도시, 한바탕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 절규조차 버거운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아니나 다를까. 최 작가는 ‘평화나눔전’에도 작품을 냈다. 전쟁을 멈추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캠페인이다. 그는 “예술이 행복한 사람들의 비위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반대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이 정직한 것이고 의미도 있다”면서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성찰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호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느낌은 낯설고 불안했다. 끊임없이 염려와 위험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 짙은 연민도 일었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맘 한 구석에 잔잔한 위로가 찾아온다. ‘나도 너처럼 고민이 많다’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최 작가는 거친 배경, 선명하지 않은 경계와 우중충한 채도, 흐릿한 얼굴들로 우리의 현실을 반추한다. 가지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하고, 변변치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세상의 잣대에 무차별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있으나 마나 하게 취급당하는 인간 군상들을 전면으로 끄집어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정말로 불편하고 없어져야 할 사람들인지, 어쩔 수 없이 파생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결과들에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 모르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낮잡아 볼 일인지 조용하게 시비를 건다. ‘그러한 사람들이 오히려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우리 사회의 아픔을 공유하려는 마음을 담아낸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인간이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포용의 나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각기 다른 장점을 칭찬하면서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얘기하는 ‘식물이 꿈꾸는 세상’이자 도시 문명에 시달리며 황폐화된 사람들의 영혼을 쓰다듬는 치유의 도원경이다.

미술은 개인과 사회의 병리현상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데 기여해왔다. 미술이 예술적, 추상적, 개념적 인식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삶의 영역을 건드리면서 거기에서 발생하는 감동으로 인간의 갖가지 고통과 상실감을 치유해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최인호 작가의 작품은 삶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종의 치료다. 인간의 근원적인 지점을 파고들고,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탐색하면서 상처를 아물게 한다.

현실을 떠난 미술은 예술영역의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예술적인 행위를 넘어선 감정의 정화작용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예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끊임없이 관조하면서 인간의 삶과 감정, 현상과 시대를 담아내고 있다.

최인호 작가의 작품은 이야기나 범주 자체가 매우 독창적이다. 재료나 형식은 매우 일반적이지만 담아내는 메시지는 전통과 권위주의에 반대한다. 또한 그는 기존의 어떠한 원칙보다 자신의 실험과 도전과 소신으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왔다. 그런 행위 자체가 자신의 마음을 해소하는 심리적 치료의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면, 그의 화풍을 따라 그려보거나 그의 작품을 구입하고 싶은 생각도 했다. 간혹 그의 그림이 주는 우중충함 때문에 찡그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바라보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발현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시’가 있다. 숙명과 비애를 인내하면서 모질고 처절한 상처들을 이겨낸 사람들의 강인함이 그의 작품 안에 살아 꿈틀거린다.

“작가는 자신이 걸어왔던 추억을 담아낸다. 순조롭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별의 아픔을 겪은 내 심정을 작품에 담았다. 처음에는 관람객들이 내 그림을 보면서 짜증 내지 않을까, 밝은 그림을 보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진정성에 대한 문제다. 그래서 초지일관으로 작업했다. 그러다 보니 내 그림을 보고 따뜻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니아층도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