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덕현. 그는 독해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화가다.
1995년이었다. 그는 80평 남짓한 국제갤러리 2층 전시공간에 흙을 가득 채우고 막 태어난 아이들이 그려진 초상화를 꺼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갤러리 건물의 한쪽 벽면을 뜯어낸 뒤 굴삭기로 흙을 퍼 올리던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지만 이날의 퍼포먼스도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 순간이 바로 그가 공간에 대한 은유와 이해력이 풍부한 화가라는 사실을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갤러리 한쪽 구석에는 인큐베이터처럼 이들을 지키는 허름한 초소가 있었고, 1층 전시장에는 해묵은 가족사진들이 여러 장 그려져 있었다. 이날 뿌려진 엽서에는 3~4세가량으로 보이는 아이가 벌거벗은 채 아이들의 초상화와 함께 서 있었다.
아마도 제목은 '삶의 계보학'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었고.
조덕현 화가는 역사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대표작가다. 흑백사진 속 인물을 연필과 흑탄으로 그려 현재로 소환하는 사진회화 작업을 오래 해왔다.
그는 80년대 후반 유럽 미술의 전통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다뤘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처음으로 역사화 작업에 들어갔으며, 현재 그의 작업은 무한대로 확장했다. 사진으로만 봐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처음 느꼈던 그때와 감동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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