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8:20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일행은 주막 찾기를 포기하고 노숙에 들어갔다. 커다란 전나무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몸을 웅크린 채 밤을 보냈다. 영하 20도에 가까운 겨울밤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혹한이 옷을 파고들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고, 입술은 파랗게 죽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눈까지 내리면서 머리와 어깨 위에 눈이 쌓였다. 몸뚱이는 온통 흰 눈으로 덮였다. 눈은 30분 동안 퍼붓더니 그대로 멈추고 만물을 얼렸다. 일행들은 손으로 몸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동장군의 기세에 맞섰다.
자정이 넘어가자 몸의 3분의 2는 얼어붙은 것처럼 마비됐다.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감각이 둔해졌다. 눈은 감겼고, 인중에는 콧물이 얼어붙었다. 관절은 염증이 생긴 것처럼 쑤시고 시큰거렸다. 귓불은 딱딱하게 굳어 가면서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고, 살갗은 꼬집어도 반응이 없었다. 팔다리도 꿈쩍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쥐가 나는 것처럼 뻑적지근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마비됐다.
장준하는 추위에 떨며 비참히 숨을 거둘 수 없었다. 절대로 잠에 들어서는 안 됐다. 그는 김준엽을 와락 껴안았다. 김준엽도 장준하를 힘껏 안으며 체온을 나눴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품으로 끌어당기고 그대로 돌부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소리조차 죽여 가며 온기를 나눴다. 다른 이들도 똑같았다. 삼삼오오 모여 서로 몸을 붙이고 추위를 견뎠다.
장준하는 졸음이 밀려오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김준엽도 눈을 끔뻑거리며 간신히 버티다가 눈을 감아버렸다. 장준하는 그때마다 김준엽을 안은 채로 몸을 움직여 흔들어 깨웠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말하진 못했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잠들면 안 된다고 일렀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 모두 추위에 사로잡혀 전혀 제구실을 못했고, 장준하도 밀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구들장에 훈훈한 열기가 들어왔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쬈다. 한여름 강변에서 물질하는 아이들, 뜨거운 고구마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 누이, 눅진하게 쏟아지던 여름 소나기,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수박, 시끄럽게 귓가를 울리는 매미소리, 모깃불을 피워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던 친구들이 장준하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꿈도 아니요 사념도 아닌 환각이었다. 그는 몸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겁이 났다. 장준하는 기도했다. 가장 처절하고 정직한 기도로 이 시련을 이기게 해 달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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