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8:22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파촉령을 오른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주막은 나타나지 않았다. 발에 밟히는 눈만 빠드득빠드득 소리를 냈다. 장준하는 김준엽과 일행에게 길을 재촉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길이 어디로 뻗었는지 알 수 없어 꼼짝없이 노숙을 해야 했다. 잘못하면 다른 길로 접어들어 이리저리 빙빙 돌거나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행은 계속 뒤처졌다. 몇몇 동지들만 두 사람 가까이에서 뒤따를 뿐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주위가 점점 어두워졌다. 숲 속에서 산짐승들의 발자국 소리가 유령의 울음처럼 들려오더니 음산하고 거무충충한 그림자가 가까이에서 희끗희끗 모습을 드러냈다. 예로부터 파촉령에는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냥꾼들이 돈이 되는 호랑이 가죽을 구하러 이곳에 몰려온다는 얘기도 많았다. 실제로 산아래 시장에 가면 네 다리와 몸통을 널찍한 나무에 판판하게 펼쳐 건조한 호랑이 가죽이 거래되곤 했다. 장준하는 설마 했다. 파촉령이 제아무리 험준하고,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해도 바로 지금 눈앞에 나타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가 장준하를 붙잡았다. 검은 줄무가 있는 짐승이 몇 보 앞에서 장준하를 유심히 바라보며 아가리를 벌리고 포효하다 나는 듯 뛰어 맞은편 숲으로 사라졌다. 절구통만 한 시베리아 호랑이였다. 일행은 양순한 소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은 발작하듯 요동쳤고, 허벅지는 부르르 떨렸다. 입에서는 부글부글 게거품을 내어놓을 뻔했다.
혼자였다면 분명 굶주린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고도 남았다. 아무리 포악한 호랑이라도 떼거리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장준하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야행성인 호랑이가 이 밤에 언제 또 나타날지 몰랐다. 그는 일행에 향해 힘을 내자고 황황히 소리쳤다. 곧 있으면 주막에 도착할 수 있다고 부랴부랴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호랑이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지 몰랐다.
장준하 일행은 허연 달이 뜨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주막에 도착했다. 후미에서 걷던 사람이 도착하기까지 20여 분이 소요됐다. 장준하는 그동안 호랑이가 또 나타날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영악하다고 소문난 호랑이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일행의 끄트머리를 공격하지 않을까 속을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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