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 장준하 일대기 082. 간부의 자세 - 주막과 두부탕

2026. 8. 25. 18:17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일행은 얼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선배 독립투사들이 독립군 자금을 운반하다 만주벌판에서 얼어 죽은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파촉령을 넘다가 참혹한 동사 위기의 체험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동사할 뻔했던 경험은 일행에게 큰 교훈을 줬다. 한겨울의 산이 얼마나 살벌하고 아찔한 곳인지 실감케 했다.


장준하는 산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일행과 함께 한참을 걸어 저녁 무렵 주막에 당도했다. 하루 종일 쫄쫄 굶었더니 그의 뱃속에서 쪼르륵쪼르륵 소리가 났다. 일행은 돗자리가 깔린 바닥에 앉아 얼큰하게 끓인 두부탕에 빨갛게 다진 고춧가루 양념을 풀어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말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큼지막하게 숭덩숭덩 썬 돼지고기는 수륙진미였고, 숟가락에 걸려 나오는 무와 배추 시래기는 보약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두부탕뿐만 아니라 기름에 튀긴 쟈오즈(만두)도 먹었다. 쟈오즈는 쫀득쫀득하고 달착지근했다. 누긋누긋하고 찰진 밀떡 반죽과 돼지비계, 양파, 두부가 잘 어우러져 혀에 착착 감겼다. 일행은 노잣돈이 부족하지 않았다. 라오허커우에서 공연하는 동안 시민들과 학생들이 준 후원금이 쾌 됐다. 사령부에서 받은 준위 급료와 공연 활동비도 똑같이 분배한 상태라 배부르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주막 한가운데 중국군 고급장교가 부하들을 뒤에 세워 놓고 거만한 표정으로 식사하고 있었다. 행동거지는 천박하고 경솔했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몇 번 쩝쩝거리며 맛을 보더니 구석으로 밀쳐 내곤 했다. 그는 사린교를 타고 파촉령을 건너는 중이었다. 사린교는 네 사람이 끈으로 가마를 들어 올려 메는 중국식 가마였다. 장준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교랍시고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가마 타고 가는 꼬락서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장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하를 이용하면 안 됐다. 인간미와 선행으로 가족을 살피듯 아랫사람들을 보살필 줄 알아야 부하들도 믿고 따랐다.


장준하는 졸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혼이 빠지도록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중국인 장교가 싫었다. 하늘 아랫사람은 다 똑같았다. 상하와 귀천이 없고, 하나님의 권능 아래 모두가 평등했다. 그는 일제가 물러나 해방이 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신분적 불평등 때문에 상식 이하의 대우를 받거나 멸시와 천대를 당해서는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