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 장준하 일대기 087. 고난의 임시정부 - 복받치는 설움과 기쁨

2026. 8. 25. 18:10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일행은 임시정부 청사 앞마당에 가로줄과 세로줄을 맞춰 가지런히 섰다. 임시정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엄숙하게 정렬했다. 마음속은 복잡다단했다. 과거의 고난이 새록새록 돋아났고, 나라 잃은 정부의 현실도 그대로 느껴졌고, 앞으로 펼쳐 칠 독립운동도 기대됐다.


임시정부는 삼일운동 직후 상해에 모인 애국지사들이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조직됐다. 각 도를 대표하는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하고, 관제를 발표하면서 정부의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사상적으로 분열되고 재정문제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초대 각료는 의장 이동녕,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신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등이었다.


임시정부는 김구가 국무령에 취임하면서 강력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다. 1937년 일본의 탄압을 피해 충칭으로 장소를 옮긴 뒤에는 장제스와 함께 대대적으로 항일전에 참여했다. 김구는 1944년 주석으로 선출된 뒤 미군과 함께 광복군 국내침투작전을 준비하다 광복을 맞았다. 그러나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국내 사정도 어수선하고 내부 갈등도 많아 임시정부의 정책은 계승되지 못했다.


일행을 인솔하던 책임자가 서한을 들고 임시정부 청사로 들어갔다. 일본군을 탈출해 중앙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50여 명의 학도병들이 막 도착했다는 소식을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알렸다.


제일 먼저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이청천 광복군 총사령관과 대여섯 명의 장군이었다. 이들은 근엄하고 자비로운 음성으로 장준하 일행을 일일이 어깨를 두드리며 맞이했다. 임시정부까지 오는 동안 고생이 많았다고 치하했다. 곧이어 두루마기를 입은 김구 주석이 나타나 차분한 표정으로 일행을 반겼다.


장준하 일행은 덩실덩실 춤을 정도로 기쁨이 용솟음쳤다. 고생 끝에 찾아온 환희로 벅차올랐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가슴에 꽉 채워졌다. 그러나 임시정부 선배들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장준하는 선배 투사들의 얼굴을  보면서 조국의 암울한 현실과 대면하는 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구국 항전과 의사, 열사의 의거를 전개하면서 가슴 아픈 사연이 많았을 것이었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김구 주석을 우러러봤다. 꿋꿋한 의지와 신념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그에겐 어떠한 공경도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