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8:11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는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한껏 숙연했다. 해방된 조국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하는 설움에 겨워 울적했다. 그는 펄펄 끓어오르는 민족의 태양을 상상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떠오른 태양은 삼천리 조국에 붉은빛을 내리쬐며 새로운 광영을 예고했다.
드넓은 충칭이 시야 가득히 펼쳐졌다. 장준하 일행은 전부 갑판에 나와 충칭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다. 지극히 맑은 정신으로 노랫말을 음미하며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충칭은 수상과 철도 교통의 요지였다. 높은 빌딩들이 가득했고, 겨울에도 춥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온화해 관광객들이 많았다. 일본은 중일전쟁 때 국민당 정부가 수도를 충칭으로 옮기자 폭격기를 동원해 도시를 파괴했다. 장제스는 미국을 끌어들여 일본군을 제압하고 제공권을 확보한 뒤 충칭을 현대식으로 재건했다.
장준하 일행은 충칭 선착장에 내려 임시정부를 찾아 헤맸다. 한국의 임시정부가 충칭에 있는지 모르는 중국인들이 대부분이라 애를 먹었다. 중국말을 잘하는 김준엽이 나서서 길을 물어물어 임시정부 앞에 도착했다. 임시정부의 외관은 너무나 초라했다. 화려하게 신축된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데다 민가를 개조해 사용한 것 같아 더욱 볼품없었다. 임시정부에는 태극기도, 현판도 걸려 있지 않았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장준하는 한 나라의 정부라고 하기엔 너무나 보잘것없는 청사를 보고 낙담했다. 임시정부는 조국의 자존심이었다.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모든 권위를 내던지고 오로지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게 책무겠지만 한국의 법통을 잇는 유일한 행정부가 너무도 추레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김준엽이 임시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 얼굴로 나왔다. 이미 임시정부가 상당히 오래전 이사 갔다며 웃어버렸다. 장준하는 그의 말을 듣고 안도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일행은 제 자리에 서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감격에 겨워 모자를 벗고 큰절을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장준하도 부동자세로 씩씩하게 경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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