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 장준하 일대기 090. 조국 잃은 슬픔 - 통곡의 바다

2026. 8. 25. 18:07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일행의 환영식에는 임시정부 각료를 비롯해 광복군총사령관과 직원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자금이 풍족하지 않아 음식은 간단했다. 도수 높은 중국 고량주와 깍두기, 건어물 같은 씹을 거리였다. 신익희 내무부장의 환영사와 김구 주석의 격려사가 끝난 뒤 장준하가 일행을 대신해 답사를 준비했다. 장준하는 일제의 통치 하에 태어나 임시정부까지 6천 리를 걸어왔던 소회를 밝혔다. 임시정부에서 태극기를 봤을 때의 감격과 조국 독립의 길을 개척하는데 목숨을 바치겠다는 다짐도 간곡하게 털어놓았다. 장준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흐느낌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장준하의 답사를 경청하며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급기야 김구 주석이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며 울자 장내는 울음바다가 됐다. 그때까지 입술을 깨물며 참던 장준하 일행도 눈물을 쏟았고, 장준하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술과 안주가 상 위에 올랐지만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장준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서 잠을 자는 일행들의 가느다란 숨소리, 이불 뒤척이는 소리, 잠에 들지 못한 일행이 내뱉는 한숨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난생처음으로 선배 투사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던 환영식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그토록 꿈꿔 왔던 조국 독립을 위해, 수많은 선배 애국지사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결연히 나설 날이 드디어 온 것 같아 설레기도 했다.


광복군 총사령부에서도 장준하 일행을 격려하는 환영식을 열었다. 임시정부에서 10여 분을 걸어가면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었다. 이곳에는 한국군뿐만 아니라 중국군 장교들도 많이 파견 나와 있었다.


환영식에는 임시정부에서 준비했던 음식보다 맛깔스러운 음식이 준비됐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음식에 손을 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복군 사령관이 격려사를 하면서 말끝을 흐리고 우는 통에 장내는 다시 눈물바다가 됐다.


장준하 일행은 여러 단체에서 초대하는 환영회에 참가했다. 환영회는 대부분 눈물바다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일행은 임시정부에 머물면서 외신과 인터뷰도 진행했고, 사진도 찍었다. 일본군을 탈출해 6천 리를 걸어 항일광복군이 된 사연은 전 세계에 보도돼 화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