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 장준하 일대기 085. 8일간의 항해 - 드디어 충칭에

2026. 8. 25. 18:13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는 바둥 시장에서 구두나 양말, 속옷 같은 생활필수품을 샀다. 충분히 먹고 자지 못한 데다 오랜 행군으로 몰골이 무말랭이처럼 초췌했다. 이런 꾀죄죄한 모습으로 충칭에 입성하기 싫었다.


그는 뒤늦게 바둥에 도착한 일행을 마중 나가 숙소에 짐을 풀게 하고 음식도 대접했다. 함께 배를 타지 못한 미안함과 뜻하지 않게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


장준하 일행은 바둥에서 사흘을 보낸 뒤 중앙군관학교 서한을 가지고 군용 선박 통제실을 찾아 승선 수속을 밟았다. 군용 선박을 타고 충칭까지 가려면 8일을 내달려야 했다. 배에는 다른 부대로 배속받거나 전쟁지역 복구를 위해 상부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선박은 유유히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갔다. 굽이치는 강물을 헤가르며 협곡과 협곡 사이를 항해했다. 강물은 산굽이와 절벽을 휘감으며 흘렀다. 절벽 틈에는 키 작은 소나무들이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고, 크고 작은 폭포수가 거대한 소리를 내며 강물을 난타했다. 이따금씩 작은 자갈과 눈덩이가 절벽 아래로 내리 뒹굴었다. 장준하는 짧은 탄성을 내지르며 하얗게 부서지는 눈덩이를 관찰했다. 전쟁만 아니라면 가슴에 울림을 주는 풍경이었다.


선박은 이틀을 달린 뒤 완현에서 하루를 쉬었다. 닻은 강 한가운데 내려졌다. 배가 커서 강변에 접근이 불가능했다. 장준하 일행은 작은 운반선을 타고 선착장에 내렸다. 완현은 한국의 제일 곡창지역인 호남평야와 비슷한 곳이었다. 대지가 기름지고 넓어서 쌀 생산량이 많았다. 또 곡창이라는 칭호에 알맞게 먹을거리가 풍부했고, 주민들의 인심도 좋았다. 전쟁을 겪으면서 인정이 각박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후했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 가격도 3분의 2 수준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밤새 완현 시내를 돌아다니며 갖가지 길거리 음식과  중국요리를 사 먹었다. 가지와 감자를 튀긴 이샨 시엔, 닭고기와 땅콩을 튀긴 꽁바오지띵, 삼겹살 비계에 향신료를 넣어 맵게 볶은 화이궈로우 등을 맛봤다. 일행은 음식점과 찻집을 돌아다니다 새벽 4시 운반선을 타고 승선했다. 장준하는 선실에 누웠다. 뱃속이 더부룩해 잠이 오지 않았다. 내친김에 장강의 해돋이를 감상하러 갑판에 나갔다. 산기슭 사이로 구름이 한결 진홍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하늘은 불바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