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8:06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는 충칭에 도착한 뒤 여러 정당과 단체가 주최한 환영식에 참가하면서 임시정부의 속사정을 조금씩 알게 됐다. 임시정부는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인원이 꽤 됐지만 숙소가 좁아 서로 따닥따닥 붙어 잠을 청했고, 볼일도 간이변소에서 해결했다. 변소는 칸막이가 낮아 일어서면 옆 칸 사람과 눈이 마주쳐 민망스러운 웃음을 지어야 했다. 음식도 맛이 아닌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했고, 독립운동자금도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급조했다. 초창기 임시정부는 한국 주요 인물들이 들고 온 독립자금과 인구세, 애국금 등을 걷어 운영됐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외국에 독립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충당했다. 이 역시 임시정부와 미국에 있던 이승만의 갈등으로 난항이 계속되면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후 독립운동자금은 중국의 지원금과 국내외에서 간간이 조달되는 돈으로 해결했지만 늘 부족했다.
장준하는 임시정부가 재정적으로 열악한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넘칠 때도 있고, 부족할 때도 있는 게 돈이었다. 문제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분열과 대립이었다. 1920년대 독립운동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자기가 소속된 정당과 단체의 이익에 따라 자기주장만 펼치면서 분열을 거듭했고, 결국 뿔뿔이 흩어져 단체를 따로 꾸렸다. 청사를 충칭에 옮긴 뒤에도 계속해서 여러 정당과 단체가 난립했으며, 이들은 조국 독립을 위한 싸움보다 자기 세를 키우는데 열중했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중국은 군웅할거의 폐풍이 뒤덮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통합을 요청했다. 그래서 1943년 모든 정당과 종교, 단체가 참여하는 임시정부가 새롭게 구성됐다. 임시정부에는 김구 주석이 소속된 한국독립당을 비롯해 조선민족혁명당, 한국무정부주의자연맹, 한국민족해방동맹, 한국청년당, 천도교 등이 참여했다. 하지만 이들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싸우면서 독립운동 자체를 어려운 상황으로 이끌었다.
장준하 일행은 충칭에 머무는 동안 임시정부 요인들이 마련한 교양강의를 들었다. 강사들은 모두 존경할만한 선배 투사였지만 자기가 소속된 정당을 선전하거나 다른 당을 비방하면서 자당 포섭에 열을 올렸다. 장준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다. 함께 뭉쳐서 일을 도모해도 모자랄 판에 뒷전에서 비웃고 헐뜯는 모습이 시정잡배 같았다. 그는 함께 파촉령을 넘어온 동지들을 대상으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정당, 단체, 종교 단체에서 초대하는 환영식과 강의를 모두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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