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 장준하 일대기 093. 탁월한 선택 - 자링 청수는 양쯔 탁류로

2026. 8. 25. 18:04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는 임시정부의 힘으로 조국 독립을 쟁취하는 것에 회의를 품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한마음으로 힘을 보태야 했다. 해방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태극기 깃발 아래 하나로 단결해야 했다. 친일파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달하며 서로를 돕고, 일본군들은 독립운동가들을 말살하려는 의지로 가득한 마당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사분오열로 갈라져 싸우는 현실이 너무나 암담했다. 광복이 되더라도 갈기갈기 찢어져 서로 삿대질하는 임시정부의 기풍이 그대로 이어질 게 뻔했다.


김구 주석은 장준하의 얘기를 듣고 크게 웃더니 그를 돌려보냈다. 표현이 좀 과격했을 뿐이지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김 주석은 6천 리를 걸어 임시정부에 온 그의 진심 어린 충고를 받아들였고, 어느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임시정부의 고질적인 병폐를 밖으로 끄집어낸 기백을 높게 샀다. 긴급 국무회의는 내무부장이 조회에 나가 장준하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끝을 맺었다.


장준하 일행은 임시정부의 분열과 정당의 포섭공작, 독립에 도움 되지 않는 논쟁에 신물이 나 <등불>을 속간하기로 했다. 일행들은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며 <등불>을 완성했다. 임시정부를 향한 조언부터 조국의 암담한 현실, 수준 높은 시와 수필까지 직접 지어 실었다. 다행히 임시정부에 등사기가 있어 한 번만 정성 들여 글을 쓰면 여러 권을 인쇄할 수 있었다. <등불> 3호는 80부를 만들어 여러 정당과 단체, 교포사회에 배포했다.


일행은 회의를 소집해 임시정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김구 주석에게도 투차오로 이동하겠다고 보고하고 여장을 꾸렸다. 투차오에는 중국진재위원회의 원조를 받아 세운 구호기관이 있었다. 이곳에는 조국에서 쫓겨난 한국인들이 거주했다.


충칭에는 장강 지류인 자링강이 흘렀다. 자링강은 물이 깨끗하고 맑기로 유명했다. 바위 틈에서 나오는 물이 모여 흘러 투명하고 차가웠다. 하지만 아래로 흘러 흘러 갈수록 탁한 장강과 합류해 본연의 성질을 잃었다. 장준하는 무릎을 탁 쳤다. 임시정부를 떠나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맑은 자링강이 동지들 같았고, 탁한 장강이 임시정부 같았다. 임시정부에 계속 머무르다 보면 동지들이 언제 탁하게 변할지 몰랐다. 또 자신들이 임시정부에 머물러 봤자 조국 독립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