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55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이범석 장군과 장준하는 나무그늘 아래에 앉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여름의 풍경을 감상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장준하였다. 원래 계획한 대로 자신을 한국침투공작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장군은 자신도 지금 당장 적진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요동치는 국제정세를 보면 일본의 패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제2지대에 남아 내일을 설계해 보자고 권했다. 그러나 장준하는 단호했다. 20여 개의 침투공작을 책임지고 있는 자신이 참가하지 않으면 많은 동지들의 의기를 꺾어놓을 것이며, 김준엽이 남아 제2지대를 지키고 있으니 광복 후 일들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범석 장군은 장준하의 한국침투공작을 허락했다. 자신이 처음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임시정부를 찾아갔을 때가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이 장군은 상해로 망명한 뒤 민족지도자들을 만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1916년 운남강무당에 입학해 독립군 장교가 됐다. 그는 촉망받는 기병장교였지만 삼일운동을 계기로 장교직을 사직하고 임시정부에 들어갔다. 그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논의 끝에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기로 하고, 신흥무관학교의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해 독립군 장교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이후 북로군정서의 군사 교관으로 부임해 사관연성소를 창설하고 600여 명의 생도들을 모집해 독립군 장교를 키워 냈다. 또 체코군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해 부대의 전투역량을 강화해서 국내 진공작전을 수차례 펼쳤다.
일본은 간도 지역에 출몰하는 독립군을 궤멸시키기 위해 훈춘사건을 조작하고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였다. 이범석 장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계곡에서 일본군을 대파하는 전적을 올렸다. 이후에도 십여 차례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독립운동사상 유례없는 승리를 거뒀다. 그는 1940년 중국 국민정부의 후원 아래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참모장이 됐지만 참모장을 고사하고 광복군 제2지대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광복군을 최정예군으로 육성하기 위해 훈련에 힘썼으며, 미국 전략정보국과 합작해 한국침투공작을 계획했다. 잠수함이나 항공기로 한국에 광복군을 침투해 거점을 확보하고, 한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는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이었다. 38명의 광복군은 한국침투공작에 선발돼 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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