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54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건물 밖에서 터져 나오는 환성 소리에 깜짝 놀라 뛰어 나갔다. 충칭에 남아 있는 동지들이 제2대로 찾아와 먼저 온 동지들과 얼싸안으며 안부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반가운 마음으로 환대했다. 비록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제2지대로 찾아와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김구 주석도 약속대로 시안을 찾았다. 장준하는 두 손을 잡고 따뜻하게 배웅하던 김 주석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떠올라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국침투공작을 앞두고 김구 주석과 동지들을 환영하는 연회가 마련됐다. 장준하의 감회는 남달랐다. 총을 메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설렘에 가슴이 떨렸지만 동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슬픔이 몰아쳐 코끝이 아릿했다. 동지들도 똑같았다. 결전의 날을 남겨두고 뜨겁게 타오르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마지막 흥을 모두 토해냈다. 무대를 휘저으며 춤을 췄고,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재꼈다. 이범석 장군도 무대에 올라 특유의 언변으로 영감을 북돋았다. 패기 넘치는 청년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는 동안 부하들을 잃으면서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침통한 마음을 달래려고 울어봤자 부하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부하들의 사기가 저하될까 두려워 눈물을 꾹꾹 참으며 보내온 세월이었다.
연회는 짧고 굵게 끝났다. 한국침투공작이 목전에 다가왔다. 흥겨움도 슬픔도 모두 부질없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오로지 하나만 생각해야 했다. 두려움을 비집고 머릿속에 침투하는 번뇌와 망상, 공포와 불안을 이겨 내려면 마음을 가라앉히고 확신을 갖는 것이 필요했다. 장준하도 서울로 침투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나 일이 잘못되면 조국 독립은 늦어질 것이고, 생명도 부지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작전을 성공시키려면 목숨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임해야 했다.
장준하는 똬리를 틀고 있던 구렁이가 군복 안으로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구렁이가 옷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꿈은 예전부터 길몽이라고 했다.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풀려 복이 된다고 했다. 그는 혀를 늘름늘름 내뱉으며 꿈틀거리는 구렁이가 징그러웠지만 한국침투공작이 잘 풀릴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는 내일을 위해 모든 잡념을 물리치고 다시 곤한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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