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38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포 시가지를 걷는 모습을 발견했다. 멀리서나마 동포를 볼 수 있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반가웠다.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동안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고생 많았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었다. 그는 해외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으며 살았던 동포들도 자신처럼 한국 땅을 밟고 눈물을 터뜨릴 것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애국가를 불렀다. 수통에 물도 가득 채웠고, 흙 한 줌도 봉투에 챙겼다. 고국산천을 그리워하는 시안의 동지들에게 고국의 물과 흙을 만져보게 하고 싶었다.
수송기에 급유가 됐다. 수송기는 이륙하자마자 높이 떠올랐다. 최고 고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비행했다. 일본의 폭격기가 뒤따르며 총탄을 퍼부을 수 있었다. 장준하는 양손을 맞쥐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번째 시도까지 물거품이 됐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머릿속을 급습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느긋이 가져야 했다.
수송기는 연료가 불량했는지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 시안까지 날아도 충분했던 연료가 벌써 바닥났다. 기장은 일본군이 관할하는 산둥성 웨이현 비행장에 불시착했다. 일본군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수송기를 겹겹이 포위했다. 바위처럼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철통같이 지킬 뿐이었다. 이미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데다 성조기가 그려진 수송기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범석 장군은 장준하 일행에게 총을 들고 일본군을 경계하라고 지시했다. 밤에는 순번을 전해 집총 자세로 보초를 세웠다. 그래야 돌아가면서 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오랜 경험과 훈련에서 나온 원숙한 대응이었다.
일본군과의 대치는 이른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일본군이 자리를 비우고 비행장 전체 경계에 들어갔다. 그 사이 한 중국 청년이 수송기 근처로 다가와 기웃거렸다. 이범석 장군은 그 청년을 불러 일본군에게 일본은 이미 항복했으니 물러가라는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중국 청년은 리원리 장군 휘하의 유격대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청년은 산둥성에 후전자 장군도 진주해 있다고 알렸다. 이 장군은 리원리, 후전자 장군과 오래전부터 두터운 친분을 맺어 온 사이였다. 이 장군은 반가운 마음에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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