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37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일행은 안전을 위해 수송기에서 나오지 않았다. 식사 대용으로 초콜릿을 나눠먹으며 허기를 견뎠다. 일본의 항복 선언에도 전쟁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고, 살얼음판 같은 충돌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일본은 여태까지 저지른 죄악이 워낙 간악 무쌍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열강의 권좌에서 얌전하게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자 리원리 장군이 중국군 2개 대대를 대동하고 비행장에 도착했다. 리 장군은 부하들에게 삼엄한 수비를 지시하고 이범석 장군을 만났다. 두 사람은 적년회포에 잠기어 두 손을 마주 잡고 긴 인사를 나눴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제를 만난 것처럼 우애를 나눴다.
리 장군은 미군사절단을 위해 웨이현 성내에 깨끗한 숙소를 마련하고, 술과 음식을 내왔다. 음식은 진수성찬이라 할 만큼 풍성했다. 테이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일행은 리 장군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말끔하게 그릇을 비웠다. 술잔이 두어 순배 오가자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리 장군도 취기가 올라 술을 돌리며 한국의 독립을 축하했다.
미군사절단에게 전통이 하달됐다. 웨이현에 대기하면서 서양인 포로수용소 상황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지시였다. 사절단은 트럭을 타고 30여 분을 달려 수용소로 향했다. 수용소 입구 허름한 초소에는 총을 든 한국인이 지키고 있었다. 수용소 관리자도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 경비원을 모집해 포로수용소를 지키는 일을 시킨 것이었다.
수용소에는 선교사를 비롯해 상인, 교사, 기술자 등 600여 명이 수용됐다. 이옷에는 젊은 남자들을 끌고 가 총살을 시켰는지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이 많았다. 인도적인 대우는 없는 듯했다. 포로들은 맨발에 누덕누덕 기운 헌 옷을 입었다. 얼굴 모양과 머리카락 색깔만 달랐지 동냥질하는 걸인 같았다. 또 얼마나 못 먹었는지 황달을 앓았고, 폐렴과 피부병으로 신음하는 사람이 많았다.
포로들은 미군사절단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포로 신분을 벗고 자유의 몸이 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환호했다. 사절단은 수용인들에 대해 간단히 실태조사를 한 뒤 식량과 의료품을 먼저 보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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