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32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미군 7함대 입성이 계속해서 늦어졌다. 어쩌면 배편을 이용한 귀국은 어려워 보였다. 미군은 제2지대 광복군을 돕기 위해 시간을 투자할 만큼 사려 깊지 않았다. 장준하는 중앙군관학교에서 보냈던 3개월처럼 상해에서도 허송세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이범석 장군의 연락을 기다리며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썼으나 가슴 위에 바윗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뜻밖의 희소식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정에게서 왔다. 상해에 비행기를 보내 임시정부 요인들을 국내로 데려가겠다는 기별이었다.
김구 주석과 요인들이 상해에 도착했다. 상해는 처음으로 임시정부가 조직된 곳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항저우, 자싱, 전장, 난징, 창사, 광저우 등을 전전하다 1940년 충칭에 자리를 잡았다.
홍커우공원에서 김구 주석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환영식에는 수천 명의 교포가 참여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교포들은 김구 주석이 연단에 오르자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렀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연호했다. 장준하 일행도 교포들의 만세 소리를 들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신이 나서 만세를 외치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장준하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김구 주석의 모습을 지켜봤다. 연단에 오른 김 주석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숨을 모아 쉬며 더듬더듬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입이 마르며 목이 막히고, 눈물이 자꾸 흘러내려 말을 잇지 못했다.
김구의 눈물은 조국 독립의 기쁨에 넘쳐 터져 나오는 눈물이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설움에 겨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의기충천했던 독립투사들의 죽음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고, 능라를 펼쳐 놓은 것처럼 장대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상해는 조국 독립을 위해 싸웠던 김구의 30년 세월이 모두 응집된 곳이었다. 초대 임시정부에서 일하던 젊은 김구의 패기와 뚝심이 실험받던 곳이었고, 일제가 김구 암살을 시도할 때 희생됐던 아내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었다. 또 지도자를 잃은 국민이 의지하고, 나라 잃은 동포들이 새 삶을 살도록 땅을 내준 제2의 고향이었다. 특히 홍커우공원은 자신의 지시를 받고 윤봉길이 폭탄을 던진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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