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 장준하 일대기 114. 텅 빈 김포 활주로 - 김포의 하오

2026. 8. 25. 17:31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강물에 햇볕이 닿자 물비늘이 번쩍였고, 고깃배는 찰싸닥거리며 바다로 향했다.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장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두 번이나 비행기를 회항해 돌아오는 날도 신기할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예감과 현실은 전혀 달랐다.


김구 주석은 상해에서 18일을 머문 뒤 1945년 11월 23일 미군정이 보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 장준하는 김구 주석의 비서 자격으로 기회를 얻었다. 그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설렘과 기대도 있었지만 초조한 기색도 역력했다. 하나는 분명했다. 조국에 확고부동한 자신의 신념과 긍지를 심을 날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굳건한 의지와 열정으로 식민지 조국에 산적했던 불행의 흔적들을 지워나가고, 현실적인 여건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가치를 실현할 때가 왔다.


장준하 일행은 자리에 앉아 오랜 묵상에 잠겼다.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는지 대화를 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장준하는 부모, 형제, 아내 생각이 간절했다. 모두들 건강하게 잘 있는지, 한국에 들어가면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졌다. 서울에 도착하면 분주한 일상이 기다렸다. 고향 의주를 방문하기는 쉽지 않았다. 임시정부의 일이 하루속히 정리돼야 가능했다. 그는 일단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바쁜 마음은 달랬다. 임시정부 요인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안이라고 알렸다.


비행기는 3시간을 달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차디찬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 오후였다. 장준하 일행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애국가를 제창했다.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웠던 애국지사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장렬하게 노래했다.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자유로운 새 나라 건설을 위해 일제 식민지 36년의 세월을 뛰어넘자는 결의이기도 했다.


비행장은 조용했다. 찬바람에 낙엽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쓸쓸하게 인사를 건넸다. 환호성을 지르는 동포도, 환호성도, 태극기도 없었다. 장준하 일행을 마중 나온 것은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명령을 받은 미군뿐이었다. 장준하는 서글펐다. 나라다운 나라를 건설하는 막중한 역할을 떠맡을 임시정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에 그저 한숨만 나왔다. 긴긴밤을 지새우며 귀국을 서두르라 안간힘을 쓰며 애를 태웠던 나날들이 무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