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 장준하 일대기 115. 몰려드는 사람들 - 경교장 도착

2026. 8. 25. 17:30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갑차 여러 대가 김포공항에 대기 중이었다. 미군은 장준하 일행을 장갑차에 나눠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장갑차는 사방이 가로막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 장준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임시정부의 은밀한 귀국은 나중에 모두 밝혀질 일이었다. 미군정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무위원이 아니라 개인 자격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 같은 비밀작전을 펼쳤다.


창밖으로 소를 앞세우고 걷는 농부가 보였다. 들판에는 짚으로 가마니를 짜는 아낙네도 보였고, 겨우살이 땔감을 지게에 짊어지고 마을 안으로 사라지는 청년도 눈에 띄었다. 벼농사가 끝나고 월동준비가 한창이었다. 조국을 떠나기 전 봤던 그때 그대로의 농한기 정경이었다. 장준하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농부에게 인사를 청했다. 하지만 미군은 개인행동이나 국민과의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엄중 경고했다.


장갑차가 한강철교를 지나 용산에 이르자 포고문과 격문이 벽에 덕지덕지 겹쳐 붙어 있었다. 해방 후 격변기를 맞은 한국사회를 엿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미군정은 한국을 쥐락펴락했고, 좌우는 대립했으며, 정당과 단체는 난립해 첨예하게 부딪쳤다.


장갑차는 서울역을 지나 서대문 경교장에 도착했다.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회가 마련한 숙소였다. 경교장만으로는 숙소가 부족해 인근 한미호텔과 신도호텔에도 따로 숙소를 준비했다.


경교장 주인은 일본 식민지 시절 금광을 개발해 부자가 됐고, 친일 단체 조선임전보국단 이사로 활동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을 도왔다. 해방 후 임시정부가 들어오자 그는 얼굴색을 바꿨다. 자신의 친일 행적을 참회하는 의미로 경교장을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회에 기증했다. 경교장의 원래 이름은 ‘죽첨정’이었다. 김구는 죽첨정이라는 일본식 이름 대신 인근 개울의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경교장에도 임시정부 요인들을 기다리는 사람도, 태극기도 없었다. 미군정은 임시정부가 곧 입국할 거라는 소식만 알렸지 정확한 시간과 도착장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임시정부 일행 15명이 귀국한 사실은 미군정 공보과가 국내 언론사 기자들에게 전파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김구 주석의 입국 소식을 전해 들은 기자들과 환영인사들이 경교장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김구 주석은 여장을 풀 여유도 없이 사람들을 맞았다. 이승만 박사도 직접 경교장을 찾아 김구 주석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