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24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의 초등학교 동창인 최기일이 신문기사를 보고 경교장을 찾았다. 최기일은 이승만의 시종비서로 일했다. 그는 징병을 피해 징용을 택하고 평양 시멘트 공장에서 일했다. 해방 후 학도병거부자동맹을 조직하고 새나라 건설에 참여했지만 좌익과 부딪치면서 이승만과 인연을 맺었다. 장준하는 어릴 적 그와 함께 예배드리고 뒷산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벌거숭이로 냇가에서 멱을 감고, 푹 익힌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사이좋게 지냈다. 부모님끼리도 무척 친해 사촌처럼 교류했다. 장준하는 아직 가족들을 보지 못했지만 그를 만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풀 수 있었다.
김구 주석은 신문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들은 민족반역자와 친일파를 제거하는 것과 조국 통일 중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었다. 김 주석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통일이라고 밝혔다. 어렵게 해방된 마당에 한 민족이 갈라지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고단한 환국의 심정도 밝혔다. 육체와 혼이 분리돼 있는 것 같은 갈급한 상황이라며 침잠해했다. 장준하의 처지도 비슷했다. 시국이 어지러워 마음이 편칠 않았고, 머지않아 거센 시련과 도전이 눈앞에 불어 닥칠 것도 예감했다.
해방 후 한국은 정치사회적 혼란기였다. 미군정은 좌익이 주도하는 인민공화국을 부인하고, 광복 이후 생긴 조선국군준비대를 해산했다. 대신 국방경비대를 발족하고, 정당등록법을 제정했으며, 명령계통을 단일화해 중앙집권제를 구체화했다. 또 박헌영, 이주하, 이강국 체포령을 내렸고, 민족주의민주주의전선, 인민공화당,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사무소를 폐쇄했으며, 좌익계열 1,000여 명을 검거했다.
수많은 정당과 사회단체는 이합집산을 되풀이했다. 그중 대표적인 정치세력은 조선공산당-남로당 계열의 좌익, 인민당-근민당 계열의 중도좌파,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했던 중도우파, 우익진영의 한민당과 김구가 중심이었던 한독당,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국민회 계열의 이승만 등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계급과 사상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했고 민족은 갈기갈기 분열됐으며, 장준하가 꿈꾸는 정의로운 새 나라 건설은 전도요원해졌다. 그는 철저한 기독교 보수주의자였다. 김구와 마찬가지로 민족통일과 신탁통치반대를 주장했고 소련과 공산주의, 좌익 세력을 거부하는 자유민주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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