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 장준하 일대기 118. 평민의 자격? -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2026. 8. 25. 17:23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미군정은 김구 주석의 육성방송을 허락했다. 시간은 2분 내외였다. 김구 주석은 엄항섭 선전부장과 장준하를 불러 연설문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논의한 뒤 장준하에게 원고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방송 시작이 1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준하는 2분 동안 어떤 얘기를 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조국에서 동포들에게 2분밖에 얘기할 수 없는 것도 이해가 안 됐지만 미군정에서 연설문에 ‘평민의 자격’이라는 구절을 꼭 넣으라는 지시가 있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이 왜 개인적인 것인지 서글프기만 했다. 그는 5분 만에 연설문을 완성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들어온 사실을 알리는 내용 그뿐이었다.

친애하는 동포들이여. 27년간이나 꿈에도 잊지 못하고 있던 조국강산에 발을 들여놓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나는 지난 5일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와서 22일까지 머무르다가 23일 상해를 떠나 당일 경성에 도착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각원 이동은 한갓 평민의 자격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여러분과 같이 우리의 독립완성을 위하여 전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전국동포가 하나로 되어 우리의 국가 독립의 시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킵시다. 앞으로 여러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을 것이고 말할 기회도 많겠기에 오늘은 다만 나와 나의 동료 일동이 무사히 이곳에 도착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KBS 영상실록)

김구 주석은 연설을 마치고 경교장에 돌아와 장준하에게 “장목사 수고했소.”라고 말했다. 김 주석은 장준하가 일본 신학교에 다니다 징병을 당한 것을 알고 꼭 장목사라고 불렀다.


장준하는 한국에 들어와 첫 번째 일요일을 맞았다. 김구 주석과 함께 감리교 정동교회를 찾아 아침 예배를 드렸다. 다음날부터는 임시정부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장준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두 손을 모아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조국 건설의 앞날에 영광이 깃들기를, 가족들에게도 평안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개인적으로는 호된 시련과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신념을 밀고 나가면서 삶의 균형을 똑바로 잡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