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 장준하 일대기 123. 조국의 비참한 현실 - 헐벗은 아이들

2026. 8. 25. 17:16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눈보라가 몰아쳤다. 찬바람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거칠게 불었다. 경교장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은 바람이 불면 와르르 무너졌다 쌓이길 반복했다. 거처로 들어가는 통로에 쌓인 눈은 빗자루로 쓸어도 그때뿐이었다. 금세 쌓인 눈에 발모가지가 푹푹 빠졌다.


경교장에 임시정부 2진 요인들의 입국소식이 전해졌다. 김포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항로를 변경해 옥구비행장에 착륙했다. 전라도 지역도 눈이 내려 교통사정이 좋지 않았고, 결빙 구간도 많았다. 미군은 천막을 뒤집어씌운 군용 트럭에 요인들을 태웠다. 그러나 요인들은 바람이 지독스레 불고 온도가 급강하하자 미군에게 트럭을 타고 움직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차에서 내려버렸다.


미군 트럭이 멈추자 마을 사람들이 몰려왔다. 학생들도 지루한 일상에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기웃거렸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부 맨발이었다. 가난에 쪼들려 겨울에도 신발조차 사 신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아니 돈이 있어도 사 신을 신발이 없었다. 해방 후 한국은 생산 시설도 낙후했고, 물자도 부족했고, 식량도 귀했다. 일제가 깡그리 다 빼앗아가는 바람에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걸인 같았다. 요인들은 신발을 신고 트럭에 타고 있어도 손발이 시려 견딜 수 없었던 마음을 고쳐먹고 트럭에 올라탔다. 미군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도 없었고, 서울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다.


요인들은 논산에 도착해 작은 여관방에서 얼얼해진 몸을 녹이며 하룻밤을 잤다. 다음날 유성비행장에서 수송기를 타고 김포비행장에 내려 곧바로 경교장으로 향했다. 경교장에는 2진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과 친지들이 몰려와 장사진을 이뤘다.


장준하는 뜨거운 함성 소리를 듣고 2진 요인이 도착한 사실을 알았다. 2진 요인들과 가족들은 눈물이 범벅이 돼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그는 김준엽을 무척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노능서가 ‘시안에서 충칭으로 되돌아간다.’는 김준엽의 전언을 가지고 도착했다. 장준하는 김준엽이 오지 않아 서운했지만 노능서를 만날 수 있어 더없이 반가웠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뜨거운 인사를 나누며 솟구치는 동지애를 나눴다. 임시정부환영준비위원회는 2진 요인들이 도착하자 경교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숙소를 따로 마련했다. 장준하는 한미호텔에 개인 숙소를 배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