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 장준하 일대기 122. 시가지를 가득 메운 태극기 - 가족생각

2026. 8. 25. 17:17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김구 주석은 손병희 선생의 묘지 참배 후 서울로 향했다. 또 다른 일정이 겹겹이었다.


장준하는 산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마주친 사람들 때문에 고향집이 문득 생각났다. 고향을 떠난 지 2년이 넘었는데도 부모 형제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아내와 결혼 2주년 기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함께 교회당에 앉아 있던 모습, 어머니가 생선살을 발라 숟가락 위에 올려주길 바라던 모습, 일본군에 끌려가는 남편을 보면서 담담하게 참아내던 아내의 모습이 눈앞에 스쳤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전에는 가족 생각에 매몰되는 것을 항상 경계했지만 이따금씩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날 때는 어쩔 수 없었다.


김구 주석이 탄 차가 갑자기 멈췄다. 종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김 주석이 차를 세웠다. 그는 차에서 성큼 내리더니 학교 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장준하도 가족생각을 잊고 김 주석을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김구 주석을 소개하자 아이들이 주석 할아버지를 외치며 그의 다리를 끌어안고 빙 둘러쌌다. 교장은 즉석에서 전체 학생을 운동장에 불러내 전체 조회를 열었다. 단에 오른 김구 주석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에게 ‘너희의 미래가 곧 조국의 미래이며 너희들이 이 나라의 주인’라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그는 선대의 잘못으로 부국강병한 나라를 후대에게 물려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인지 자꾸 끝말을 잇지 못했다.


김구 주석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지가 있는 망우리로 향했다. 안창호 선생은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을 조직하고 일제에 저항하며 민족의식 개혁과 계몽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였다. 임시정부에서는 내무총장을 역임했다. 일행은 성묘를 마치고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인들의 모임인 조선기독교남부대회에서 주최하는 환영회에 참석한 뒤 열아홉 개 청년단체가 연합한 독립촉성중앙청년회와 면담했다.


서울운동장에 서울시민 3만여 명이 모였다. 임시정부 환국 봉영회가 기행렬을 열기로 한 날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시민들은 만세를 외치며 광복의 기쁨을 다시 한번 만끽했다. 만세의 의미에는 혼란한 시국을 속히 극복해 나라의 전망을 밝히자는 뜻도 있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군용 무개차를 타고 서울운동장을 빠져나갔다. 인도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손에 들고 있던 태극기를 흔들었고, 요인들도 손을 흔들며 이들의 환호에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