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07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첫 국무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경교장에 김구 주석을 비롯해 이승만 박사 등 요인들과 보도진이 경교장으로 들이닥쳤다. 임시정부 2진 요인들의 귀국이 그나마 늦어져 어지러운 시국이 교통정리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 임시정부 안에서 누가 먼저 한국에 들어갈 것이냐를 두고 터져 나왔던 불만이 또다시 국무회의에서 고개를 들었다.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상황이었다. 조국에는 갖가지 풀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했다. 그런 상황에서 요인들이 내뱉을 불평은 아니었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했다. 공포스럽고, 잔혹하고, 끔찍하고, 처절한 과정에 치달아도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면 언젠가는 더 나은 결말을 낳았다. 사람들은 더 나은 결말을 찾아가기 위해 타인과 관계를 맺었다. 이것이 여러 가지 고민과 괴로움을 잉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었다. 결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였고, 여러 가지 문제들도 서로 부딪쳐야 정답이 나왔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결별을 선택하려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잣대로 테두리를 그어 놓고 그 선을 넘어가지도, 넘어오지도 못하게 마음을 돌렸다. 바라는 마음 없이 먼저 헌신하고 희생하면 모든 상황은 역전됐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 믿고 도우면 무엇이든 만들어 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군정이나 특정한 정치세력에 의해 조국은 희생자가 될 게 뻔했다.
장준하는 회의를 품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3개월 만에 의욕을 잃고 실의에 빠졌다. 그는 국무회의 참여를 고사하고 경교장을 빠져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신념을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일다운 일을 하고 싶었다. 그의 귓가에 돌담길을 걷는 연인들의 따뜻한 음성이 들렸다.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순수한 사랑,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벅찬 의로움이 가슴속을 내리쳤다. 그는 정동 골목 모퉁이를 돌아 대한문에 들어섰다.
거대한 나무 기둥이 치받들어 올린 추녀가 아름다웠다. 추녀 끝에는 자잘한 고드름이 하얗게 매달렸고, 처마 물이 고이는 자리에는 누렇게 익은 잡초들이 설핏하게 말라붙었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며 대한문 광장으로 오후의 햇살을 불러들였다. 장준하의 마음에도 환한 일광이 깃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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