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 차창 위로 쌓였다.
나는 그것을 걷어내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 낙엽들이 마치 오랜 세월의 잔재 같아서다.
인생도 결국 자신이 흩어질 자리를 찾아가는 거다.

날이 몹시 추웠던 어느 가을날.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단풍이 고개를 세운 채 븕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단풍을 보면서 술을 천천히 마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그 따스함이 꼭 붉은 빛과 섞이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을의 끝에는 결국 낙엽이 남는구나. 스러지는 법을 아는 것들이 마지막에.”

꽃잎이 다 지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서 얼음 냄새가 났다.
비에 젖은 땅, 낙엽이 썩어가는 냄새를 뚫고 생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향기.
나는 그것을 ‘익음’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가을이 익듯이 사람도 결국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라고.

젊을 때는 불타오르다 사라지지만 나이를 먹으면 천천히 스며든다.
가을은 그 느림을 사랑하고 느림의 끝은 만취다.
나는 술잔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가을이란 술에 취하는 계절이지.”

비로소 가을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한때 그 바람 속에는 단풍 냄새가 섞여 있었는데 이제는 그 향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맑고 비어 있는 냄새가 있었다.
나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술보다 깨끗했고, 술보다 오래 남는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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