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흐를수록 가을은 점점 더 짙어졌다.
강가 언덕에 서 있던 억새들이 햇빛을 머금고 은빛으로 반짝였다.
투명하게 흔들리는 술잔처럼.

억새의 흔들림을 보면서 오래전 가을의 기억을 떠올렸다.
젊은 시절 사랑하던 사람과 억새밭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날.
그날의 바람은 아직도 내 머리카락 사이를 스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릿속은 점점 조용해졌다.
이름은 잊혔지만억새의 향기만큼은 잊히지 않았다.
가을 억새는 어둠 속에서도 흰빛으로 피어나며 나를 물들인다.

나는 작은 술병을 들고 억새밭을 걸었다. 술을 마시려는 것도, 기억해내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 순간 무언가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한 잔, 두 잔. 천천히 술을 마였다. 입안에 남는 알싸한 술 향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가슴께에서 묘하게 돌았다. 그것은 가을의 냄새와 비슷했다. 볕이 조금 기울고, 억새가 말라 부서질 때 나는 그 특유의 향기. 삶이 한 계절의 끝자락에 이르러 자신을 태워내는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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