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한 도시. 폐 한쪽을 들어낸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훑어보지만 어떠한 감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연인들의 고함소리, 오토바이 폭주족들의 배기통 소음, 무거운 쇼핑백을 들고 끙끙거리는 아주머니들의 한숨만이 이곳이 삭막한 도시라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툭.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 사이로 숨 가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가 부딪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봐 무섭다. 서울은 사람이 너무도 많고 날카롭다. ‘우리에게 날개가 있다면 저 넓은 하늘로 훨훨 날아갈 텐데.’ ‘이렇게 부딪쳐 감정을 소비하는 일도 없을 텐데.’ 애달픈 심정이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아뿔싸. 상어들이 하늘에서 헤엄치고 있다.
가끔 하늘을 볼 때가 있다. 일상에 쫓기거나 자질구레한 충돌로 쓸쓸함이 뻗어오는 날에는 더욱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하늘을 보면서 평화와 고요의 시간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추억 속에 매몰된 영상들을 살며시 들춰보면서 몽환적인 기분에 빠진다. 그러면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처럼 가슴이 시원해진다. 하늘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동시에 마음도 아프다. 일상에 녹아있는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 같아 자책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상어는 도시의 허공을 배회하며, 이 도시의 끔찍한 차가움에 반항했다. 가슴에는 이 시대에 대한 복수심이 선명하게 서려 있었고, 눈빛은 자유와 희망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상어는 시기와 증오로 혼미해진 사람들을 뒤로하고 제 갈 길을 갔다. 속세의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과 지독한 이별의식을 했다.
코로나19가 침습하지 않았을 때였다. 명동 거리를 걷다 에비뉴엘과 영플라자를 잇는 러브릿지에 상어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봤다. 김창환 조각가가 스테인리스 스틸 철사로 만든 상어였다.
김 조각가는 대학 시절 보일러 수리, 건축공사현장 철근 가설 작업 등을 하면서 공부했다. 그때 철근구조물 설치 경험이 현재 그의 작업의 모티브가 됐다. 그는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이 만들어내는 어른거림이나 철선의 구성을 연구했고, 다양한 패턴에 대한 연구를 거쳐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작품을 만들게 됐다. 가볍지만 견고한 작품이다.
상어는 김창환 조각가가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일상에 얽매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상어를 보면서 위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사로운 볕에 이성과 지성이 달아날 것 같은 날이다. 상어가 준 짧은 충격은 내 추억 속에 머무르며 두고두고 큰 위로와 기쁨을 줄 것 같다. 이 고마운 마음을 하늘 위 구름 사이 상어에게 던진다.
현대인들은 어깨가 무거워지는 날이면 가끔 옛 사람이나 자연과 벗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위로를 받는다. 혹독한 세상이 마음에 상처를 주고, 변함없이 추악한 손길을 내밀더라도 추억으로 인해 지치고 찡그려진 얼굴을 바꾼다. 특히 순수했던 시절, 멋진 장소, 예술의 감동, 자연의 향취와 같은 추억은 넓은 마음으로 묵묵하게 삶을 관조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상어는 바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층에 있는 생명체다. 빠른 속도와 강력한 아귀로 다른 생명들을 제압한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유영하는 상어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공포스러운 이빨도, 벌렁거리는 아가미도 없이 선으로만 구성된 최소한의 형태다. 그래서인지 상어는 정체불명의 기계 혹은 비행물체 같기도 하고, 도시에서만 떠도는 도시인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창한 조각가의 작품은 낮에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선이 굵고 분명한 형태였더라면 이처럼 미려한 아름다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어는 밤이 되면 달라진다. 도시의 빛에 반사되면서 신비로운 광채를 발산한다.
이 작품들은 그가 직접 제작한 합성수지 상어다. 그는 5cm가 조금 넘는 스테인리스 스틸 철사를 하나하나 용접해 단순하고 매끈한 형태를 만들었다. 완성된 작품의 크기는 대부분 3m 이상이며, 한 작품 당 작업시간은 5~6개월이 소요된다.



'이야기 > 미술과 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해경 '초록서정'전 - 세필의 정교함에 말을 잃다 (0) | 2022.10.06 |
|---|---|
| 한국 미술운동의 기폭제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0) | 2022.10.06 |
| 이소영, 알렉산더 우가이 2인전 - 고려인 삶에서 우리 미래를 보다 (0) | 2022.10.05 |
| 김잔디 '소리 없는 섬'전 - 절대 고요에서 보는 혼란 (0) | 2022.10.05 |
| 문재성 - 삶에 움찔할 땐 반딧불이를 만나보자 (0) | 2022.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