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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미술과 인물

김잔디 '소리 없는 섬'전 - 절대 고요에서 보는 혼란

전시장 전경 ⓒ사루비아다방


눈에 혼란을 준다. 시각적으로 자극한다. (위 사진은 조명이 밝은 편이다. 전시장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우 어두웠다.) 액자는 물에 뜬 것처럼 전시장에서 부유하고, 그림은 3D 영상처럼 허공에 떠 흔들린다. 살아 있는 생명처럼 작품들이 숨을 쉬는 것 같다. 전시장이 어두운 데다 할로겐 조명으로 그림을 부각한 이유가 크다. 그림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김잔디 작가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 디스플레이다. 이것은 ‘사루비아다방’이라는 공간이 가진 강점이기도 하다. 지하 창고 같은 분위기, 왠지 모르게 편안하고 몽환적인 느낌이랄까.

김잔디 작가의 작품은 ‘집’이다. 덤불에 뒤덮여 황량하게만 보였던 공간들이 부유한다. 김 작가의 집 작업은 공장건물이나 재개발 대상지역, 버려진 산업구조물 등 어린 시절 각인됐던 장소를 기억해내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작업이 거듭될수록 점점 ‘집’으로 압축됐다. 김 작가는 그 집이 있는 공간을 ‘소리 없는 섬’이라고 부른다.

김 작가의 작품은 반대의 이미지가 서로 대립한다. 굉장히 자유롭지만 뭔가 강한 기운에 지배돼 있는 공간, 유토피아 같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을 투영하는 집,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쓰임을 당하고 버려진 섬. 고요하지만 폭풍전야 같다. 억수 같은 비가 곧 쏟아질 것처럼 완전한 고요함이 흐르는 풍경. 욕망이 멈추고, 빈부의 격차가 없고, 삶의 척도가 물질이 아닌 유토피아지만 번갯불과 우레를 동반한 쓰나미로 공멸해버린 세상 같은 느낌. 그의 집은 그렇게 두 가지로 보인다.

김 작가가 형상화한 집은 ‘누구의 집’이나 ‘누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집, 고향처럼 우리에게 막연한 향수와 그리움을 환기시키는 집이다. 그는 이 집을 통해 현실을 사는 인간들의 불안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체제와 현실에 찌들어 허우적대는 인간들에게 ‘신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는 집을 중의적이고 부조리한 공간, 그토록 그리워하지만 가볼 수 없는 곳으로 초현실화한다. 집은 회귀본능을 자극하지만 한 곳에 정주할 수 없는,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투영한다. 그렇기에 그의 집은 ‘머무는 곳’의 의미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장소, 유토피아처럼 우리가 꿈꾸는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집의 이미지에 자유 혹은 죽음,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는 물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끄집어낸다. 인간의 불안한 내면, 불확실한 삶에 대한 고뇌다. 그러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찾으려고 하지만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추한다.

이를 테면 우리는 ‘인권’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신문이나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고, 누구나 인권을 외치는 세상이 됐다. 이에 따라 세상도 살기 좋아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여러 군데서 통곡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많은 이들이 죽음으로 저항하고 있다. 인권을 외치는 소리는 늘어났지만 아직도 현실은 척박한 인권 문제와 마주 서있다. 보이고, 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실. 근본이 바뀌지 않아서, 이 불안을 보려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김잔디 작가는 집이라는 공간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평화를 그려냈지만 비뚤어지고 해괴망측한 현실을 사영해낸다. 고단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의 단면도 그려낸다. 다시 말하면 김 작가의 집은 평화로운 공간을 통해 불안한 현실을 살펴보는 업경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실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집 또한 우리가 만들고, 김 작가 또한 집을 그리 듯이 타인의 가슴에 못을 박고, 괴롭히고, 절단하고, 폭행하는 것도 물론 인간이다. 잘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고, 평온을 얻고 싶지만 행동은 그 반대로 한다.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겹겹이 교차돼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두 개를 얻으면 누군가는 한 개를 잃어야 한다. 예를 들면 자기만 잘 사는 문제에 연연하면 세상은 점점 힘들어지고, 순종과 굴종을 받아들이면 진정한 행복도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두 가지를 긍정해야 한다. 기쁨과 아름다움을 긍정한다면 슬픔과 더러움도 긍정해야 한다. 그러한 긍정 속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도 나오게 돼 있다. 기쁨과 아름다움만 찾고 슬픔과 더러움을 외면하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김 작가가 말하는 집이 주는 메시지도 여기에서 출발하는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우아하게 보이지만 이면은 다르다고. 또 평화롭고 우아한 세상이란 평화롭거나 우아하지 않은 세상을 바라봐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전시장 전경 ⓒ사루비아다방
전시장 전경 ⓒ사루비아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