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빛 야경. 환상적이다. 혼란 속에서 질서가 더욱 의미가 있듯이 평범해 보이는 푸른빛 야경을 아름다운 자연으로 바꿔주는 반딧불이는 그래서 더욱 마음을 사로잡는다. 고단한 삶에 불면까지 찾아오는 밤이면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세지 말고 문재성 작가의 그림을 떠올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보길 바란다. 문 작가의 반딧불이는 당신에게 아름다운 수면제가 돼줄 것이다.
반딧불이는 문재성 작가가 ‘빛에 대한 장고 끝에 6년 동안 연작으로 작업한 소재’다. 반딧불이는 깨끗한 곳에서 사는 생명. 그동안 문 작가가 망가져가는 자연환경에서 건져 올린 반딧불이는 구원과 희망, 성찰과 위로의 메시아로 치환된다. 특히 도시 문명에 지친 현대인들,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이들, 먹고사는 문제에 절박한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 할 수 있다.
반딧불이가 노란 물감이 번진 것처럼, 하얀 물감이 퍼진 것처럼 캔버스를 날아다닌다. 수채화 같은 농담으로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문재성 작가는 평면적인 산수화에 반딧불이를 점묘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표현법은 반딧불이를 원근감 있게 보여주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문재성의 산수는 한국화의 맥을 잇는다. 계곡을 흐르는 물, 느긋하게 흐르는 물줄기, 조물주가 빚어놓은 자연을 먹의 농담과 채색으로 예스럽게 풀어놓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강가 바위와 수풀 사이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젓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향긋한 민물 냄새가 나고, 산천초목의 푸름에 눈이 시원해진다. 또 늦여름 밤 정자에 앉아 별 깊은 하늘을 보는 것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에 취하게 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위로다.
우리가 형상해온 인생 가운데 서 있다 보면 마음이 움찔하고 다리가 후들거릴 때가 온다. 뜻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보통 자연으로 떠나 삶을 위로하곤 한다.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며 술로 달래기도 하고, 아니면 빌딩 그림자가 드리운 후미진 도시의 뒷골목에서 상념에 젖는다.
이제는 문재성 작가의 반딧불이를 만나보자. 자연과 같이 예술도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다. 반딧불이는 외로움을 등에 지고 산다. 수명은 2주. 먹는 것은 이슬이 전부다. 또 반딧불이는 환경이 깨끗하지 못한 곳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럼에도 반딧불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기 몸보다 큰 빛을 발광하며 날아다니다 알을 낳고 죽는다. 아련한 몸놀림으로, 작은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힌다.
반딧불이의 생태는 인간에게 심인적으로 힘을 준다. 하등 다를 바 없는 어두운 일상에 희망을 선사하고 마음속 상처를 은근하게 쓰다듬는다. 또 살면서 겪게 되는 고난을 배움으로 변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고난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다. 거기에서 인생은 출발하고, 끝을 맺는다.
문재성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전북도립미술관 서울분관은 자연과의 교감과 에너지로 충만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다. 반딧불이가 그림 속에서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밝히고, 도시의 냉정함에 쓸린 관람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전시장은 여흥과 순정으로 넘실거린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렇게 푸릇하고 환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도 좋아진다. 답답한 도시 생활의 자잘한 시름까지 씻어내는 그림이다. 주머니 사정만 허락한다면 하나 사서 집에 걸어놓고 매일매일 감상하고 싶을 정도다.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은 도시문명의 암담한 미래,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쳐가는 도시에서의 캄캄한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저 푸른 어둠의 끝에서 온 몸에 번져오는 실타래 같은 자본주의의 고통, 그리고 감성에 눈을 뜨면서 알게 된 아름다움, 고통과 번민이 시작됐던 추억들도 추적추적 뇌리에서 스친다.
반딧불이는 미신이나 금기 같은 운명에 휩쓸리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생의 길을 찾도록 인도한다. 세속에서 찌든 마음은 그대로 빛 가장자리에서 불태워버리고, 가난해도 향기 고운 사람을 꿈꾸게 한다.
반딧불이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아끼고 가꿔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 자연을 해치지 않은 생활, 자연의 귀중함을 아는 지혜다. 또 허무한 희망과 흥미 없는 인생을 질책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보지 못하는 인간의 오만함도 일깨운다.
문재성 작가의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로만 보면 가볍고 경쾌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직접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보면 굉장히 유연하고 경건하다. 반딧불이가 푸른 하늘을 노랗게, 하얗게 수놓은 모습은 서민적이고 낭만적으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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