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장-미셸 바스키아'를 모를 리 없다. 바스키아는 미국의 '뉴 페인팅'(신표현주의와 신구상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21세기 미국의 '검은 피카소'로도 불린다.
뉴 페인팅은 1980년대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구상 회화로, 1970년대까지 성행하던 전위주의가 후퇴한 뒤 미국과 유럽에서 인간의 형태를 중심 주제로 삼아 등장한 거친 필치의 정력적인 미술사조다.
바스키아는 약관의 나이에 미술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트레이드 마크처럼 고독과 자유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성공을 대가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다 마약에까지 손을 대면서 급격하게 무너지고 말았고, 1988년 27세의 나이에 드라마 같은 삶을 마감했다. 이때부터 그는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지독한 연민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불리게 됐다.
바스키아의 일대기는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감독 줄리앙 슈나벨의 영화로 재현되기도 했고, 2010년 탐라 데이비스 감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장-미셸 바스키아는 1960년 12월 22일 미국 뉴욕주의 브룩클린에서 중산층 회계사이자 아이티인 아버지와 푸에르트리코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그의 부모님은 바스키아가 7살 되던 해 이혼했다.
바스키아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피카소의 '게르니카' 그림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예술가가 되기를 꿈꿨다. 바스키아는 15살에 집을 나와 17살에 진보적인 대안 고등학교인 'City As School'를 그만두고, 낙서화가 알 디아즈와 함께 뉴욕의 거리를 전전하면서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스프레이마커나 오일크레용을 사용해 뉴욕 소호 거리 외벽에 미국 사회에 저항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바스키아의 작품은 도시 곳곳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도시를 캔버스 삼아 비주류의 정서로 본 미국 사회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내면서 각광을 받았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미술평론가들과 갤러리로부터 호평을 얻었고, 그라피티가 현대 미술의 한 장면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 등과 동시에 잡지에 실릴 정도로 유명화가가 된다. 그러나 유명세를 타고 인기가 높아질수록 바스키아의 마음 한 구석에는 옛 친구들과의 이별로 극심한 고독을 경험한다. 성공의 대가로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옛 친구인 베니와의 사이도 멀어진다. 또 자기를 키워준 미술평론가와도 결별함으로써 그의 쓸쓸함은 극에 달한다.
바스키아는 자신의 정신적 지주인 앤디 워홀로부터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받는다. 하지만 1987년 2월 워홀이 죽자 바스키아는 실의에 빠져 자신의 영혼을 잃은 듯 행동한다. 매일 눈물을 흘리며 거리를 방황하고 마약에 중독된다. 그리고 그는 거리에서 시작한 천재화가 바스키아의 예술세계는 끝내 거리에서 종지부를 찍는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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