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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미술과 인물

백남준 - 날카롭지만 유쾌한 사회비판 비디오 아트

다다익선, 198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백남준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안에는 수백 개의 브라운관이 하늘을 향해 총천연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몸이 움츠려 들었다. 나는 웅장한 스케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자 저절로 주눅이 들어버렸다.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그 순간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다. 비디오 아트는 백남준이 만들고 발전시켰으며, 수많은 후배 예술가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백남준을 세계적인 작가라고 얘기하면 폄훼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른손을 짝 펴 보인다. 등수로 따지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티스트라고.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백남준이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 실감하곤 했다.

백남준은 예술을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고 재밌는 것, 혹은 '사기'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그의 얘기에서 비디오 아트가 태동한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비디오 아트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예술적 가능성의 확장'과 '형식주의 예술에 대한 반발'로 태동했다. 하지만 비디오 아트의 형식이 무엇이며,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의 연장으로, 어떤 면에서는 예술의 연장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환경, 공간 등 여러 가지 상황과 결합되면 비디오 아트는 더욱 복잡해진다. 비디오 아트가 어느 정도 발전하고, 어느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 짐작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트적인 요소보다는 감상자의 주체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력했다. 그래서 비디오 아트는 부조리한 세상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도구가 됐다.

1960~7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는 신구 세대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기존의 사회질서에 반대하는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문화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남준을 비롯한 일련의 아티스트들은 다수의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매체인 비디오를 사용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백남준의 작품 '과달카날 레퀴엠, 1977'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였던 과달카날 섬에서 백남준과 샬롯 무어먼이 함께 한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이다. 이 작품에서 백남준은 전쟁에 관해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비판하지 않았지만 기억과 역사를 되새기는 행위만으로도 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