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정액은 곪아가는 다리를 타고 흐른다. 여자의 젖가슴에서 흘러나온 우유는 아랫도리로 뚝뚝 흘러내린다. 땅을 향해 떨군 두 인물의 얼굴은 비탄에 잠겨 있고, 공중에 매달린 채 힘 없이 처져있는 육체는 비참하고 처절하다.
1991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가장 저주스럽고 숭고한 미술작품이 전시됐다. 키키 스미스(Kiki Smith)의 벌거벗은 남녀 등신상 조각이다. 당시 예술전문잡지를 가득 채운 이 작품을 보면서 구토가 날 것 같았던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편으론 가슴 찡한 울림과 연민을 경험하기도 했다. 벌겋게 헐벗은 몸으로 공중에 매달려 있는 이들에게서 고통과 비탄에 잠겨 있는 인간과 우리 사회의 참혹한 자화상이 연상됐다.
키키 스미스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여성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80년대 초 그녀는 언더그라운드 비주류 작가로 인식됐지만, 세계는 그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을 울리는 서사적 레러티브와 독창적인 미적 언어는 1990년 Museum of Modern Art의 'Projects'전시를 기점으로 그녀를 세계 정상급 화가로 인정받게 했다.
키키 스미스는 인간의 '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저명한 미니멀리즘 조각가였던 아버지 '토니 스미스'의 사망, 그리고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언니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암울하고 우울한 작품 활동에 매달렸다. 신체를 해부하거나 병리학적인 대상으로 재현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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