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8. 21:51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중앙군관학교 4개월 초급반이 끝났다. 한국광복군훈련반은 그동안 특별하게 배운 게 없었지만 중국군과 함께 졸업했다. 뒤늦게 합류한 장준하 일행은 3개월 만에 교육을 마쳤다. 중국군은 졸업실에서 총지휘관의 지시에 맞춰 대규모의 사열을 준비했고 팀을 조직해 총검술, 유격시범 등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한국광복군훈련반은 졸업식 전야제에서 예술제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장준하는 졸업 전 <등불> 2호 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등불>을 펴 들고 무료함을 달했던 동지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창간호 발행과 동시에 <등불>의 맥이 끊기는 건 스스로 용서가 안 됐다.
전야제에서 선보일 연극은 노능서의 일화를 각색하기로 했다. 그는 홀어머니를 두고 학도병으로 징집된 뒤 일본군에서 탈출해 중앙군관학교에 왔다. 강제 징병 때문에 어머니를 지척에서 모실 수 없었던 그의 운명은 학도병의 처량한 신세를 그대로 대변했다.
일본은 1943년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지원병 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지원이 부진하자 관제행사를 열어 학도병 지원을 독려했다. 문인들을 대상으로는 학도병 권유를 권유하는 글을 쓰게 하거나 연사로 동원했다. 강제 징집된 학도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친일파 숙청 때에도 건재함을 과시하며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로 활동했다.
연극 대본은 김준엽이 맡았다. 노능서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연극에 맞게 살을 붙여 비극적으로 각색했다. 줄거리는 아들의 강제 징병된 소식을 듣고 쓰러진 어머니와 어머니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주인공이 중국군과 함께 일본군 침투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장준하는 연출을 맡았다. 교사로 재직할 때 아이들의 연극 수업을 지도한 적이 몇 번 있을 뿐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경험 있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주연은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노능서가 맡았고, 주변 인물로 10여 명이 참여했다. 훈련병들은 열정적으로 연기를 펼쳤다. 특히 일본군이 학도병을 구타하거나 괴롭히는 장면을 실감 나게 연기하는 바람에 노능서의 몸에 피멍까지 들었다. 장준하는 연기에 크게 참견하지 않았다. 아주 이상하거나 정리가 필요한 부분만 조언하며 무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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