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 장준하 일대기 054. 친일 신문과 <등불> 그리고 졸업식 - 중국군 육군 준위로 임명되다

2026. 8. 28. 21:47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김준엽은 졸업식 전야제에서 연사로 나와 혈기 넘치는 목소리로 일제의 침략전쟁을 비판했다. 한국광복군훈련반을 개설해 조국 독립에 도움을 준 중국군에도 고마움을 표했다. 홍석훈은 정감 넘치는 목소리로 한국의 옛 가요를 독창했고, 진경성은 단아하고 절제된 고고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전야제 마지막은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 전체가 무대에 올라 독립군가를 합창했다.

풍성한 내용과 열성적인 공연에 감복한 중국군 관객들은 일제히 환성과 박수갈채, 휘파람을 쏟아냈다. 오래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준 한국광복군훈련반 대원들에게 보내는 명랑하고 요란스러운 반응이었다. 장준하는  예술제로 한민족의 결속력과 자긍심을 보여준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다음날 졸업식이 열렸다. 장준하는 중국군 육군 준위에 임명됐다. 그는 장교 계급장을 달자 쑥스러웠지만 하루빨리 독립운동의 대열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앞서 한없이 기뻤다.

장준하는 졸업식 날 <등불> 제2호를 발간했다. 그는 <등불>을 먼저 보겠다고 옥신각신하는 동지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는 <조선일보>와 같은 친일 신문이 판을 치고 있을 때 <등불>은 그 이름 그대로 동지들에게 공동체 의식과 조국 독립의 염원을 불어넣었다.


<조선일보>는 처음 창간될 때 재정상황이 어려워 인쇄기를 돌릴 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친일에 적극적으로 부역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932년 만주동포를 위한 의연금을 빼돌려 쓰다 적발된 뒤 일제의 손아귀에 좌지우지됐고, 이후 고리대급업자인 방응모에게 넘어가면서 친일 성향으로 돌아섰다. 방응모는 1937년 8월 경성방송국 시국강연에서 “일본제국은 지나(중국)의 베일을 절멸케 하여 극동 평화를 확립시키려 한다.”고 말하는 등 침략 정책에 협력했다. 특히 1944년 비행기를 헌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의 창립 발기인 등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전쟁에 협력했다.

<동아일보>의 창업주 김성수도 친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성수는 1943년 8월 5일 자 <매일신보> 기고문에서 “징병제 실시로 비로소 조선인이 명실상부한 황국의 신민이 됐다.”고 주장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학도병 지원을 장려했다. 그는 일본이 전시총동원 체제에 맞춰 설립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이사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