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8. 21:53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한국인 훈련병들의 답답한 심정은 난행으로 이어졌다. 가느다란 희망조차 묵살된 현실이 갑작스레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자라나 버렸다. 장준하는 실의에 빠진 동지들을 위해 새로운 활력소를 찾으려 했다. 동지들이 맥 빠지고 힘겨운 조건을 딛고 일어서서 조국 독립의 밀알이 되도록 돕고 싶었다. 하지만 제약이 많은 상황인지라 특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동지 두 명이 낭패감에 젖은 상태로 민가를 돌아다니며 술을 강탈해 마시고 만취 상태에서 온갖 추태를 부렸다. 술 취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부리는 물의가 아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험한 욕설을 내뱉고, 아무 데나 오줌을 갈기고, 길거리에 벌러덩 누워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일본도로 개를 무 베듯 죽여 버렸고, 주민들을 위협했다. 건장한 청년들이 칼을 들고 린촨 거리를 활보하자 주민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와들와들 떨었다.
두 동지의 난행은 중앙군관학교에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잠을 자는 동지들을 발로 차 깨운 뒤 포악스럽고 무지막지한 폭언을 늘어놓았고, 칼을 휘두르며 모두 베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훈련병들은 이들의 잔인한 표정에 놀라 혼비백산 도망을 쳤고, 미리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은 구석에 모여 두 동지의 행패가 끝나기만을 부르르 떨며 기다렸다. 난폭한 언행은 서너 시간 뒤 끝났다. 미칠 듯이 모든 힘을 쏟아버리고 나니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두 동지는 무장한 중국군에게 연행돼 영창에 갇혔다. 장준하는 고통스러웠다. 중국인을 강박하는 것도 모자라 동지들에게까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겪었다. 그는 이들의 난행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모든 원인은 나라 잃은 서러움이었고,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라 충동적으로 벌어진 난동이었다.
영창 생활은 훈련병 생활보다 더욱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에 한 끼만 밀가루빵 1개와 멀건 배춧국이 배식됐다. 장준하는 두 동지를 위해 사식을 준비했다. 이들은 그가 챙겨주는 사식을 허겁지겁 먹은 뒤 손을 붙잡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자신들의 실수를 뼈저리게 뉘우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울먹였다. 장준하는 사식을 챙겨주고 뒤돌아 나오는 길에 항상 울었다. 이러한 비극을 초래하게 만든 일본을 떠올리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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