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7. 12:41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중앙군은 평한선 철도를 넘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철도 탈환 작전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과 협상해 철도를 건너가려고 했다. 장준하는 차림차림이 남루한 군인들이 가마 50여 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단박에 알아차렸다. 사단장과 고급 장교들의 가족과 애첩들이 탄 가마였다. 그는 중앙군관학교에서 중국군이 일본군과 모종의 거래를 한 뒤 적진을 빠져나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충성스럽고 용감무쌍한 군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지만 종종 비열하거나 파렴치한 사령관들이 공공연하게 일본군과 협상해 개인의 안전을 도모했다. 협상은 언제나 모욕적이었다. 일본군은 군인들의 목숨 값을 충분히 보상해 주고도 남을 만큼을 대가를 중국군에 요구했다. 또 중국군이 자신을 속이고 갑작스레 공세를 펼칠 수 있기 때문에 대가를 모두 얻은 뒤에야 비로소 응했다. 대가는 대부분 일본군의 노역에 중국 주민들을 대규모로 동원시키는 것이었다. 중국군은 군말 없이 일본군의 흥정을 받아들였다.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전횡이었다.
장준하는 마을에 주민이 없는 이유를 그때서야 알았다. 주민들은 일본군에게 끌려가 노역 중이었다. 노역에 동원된 주민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고된 중노동에 시달리다 영양실조로 죽는 일이 속출했다. 탄광이나 광산에서 일하다 갱도가 무너져 매몰되는 이들이 허다했다. 일본의 부당한 대우에 반항하거나 노역에서 빠지려고 몰래 탈출을 시도하다가 즉결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일본군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중국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전쟁 중에는 모든 주민이 군의 명령에 따라야 했고, 이를 거부하면 총살을 면치 못했다.
장준하는 격분했다. 사령관에게서 짐승 사체가 썩는 악취가 풍겼다. 남의 나라 일이라지만 통탄스럽기 짝이 없었다. 공포와 굶주림이 허덕이며 목숨을 연명하는 국민의 아픔을 보지 못하는 군의 탐욕과 횡포에 치가 떨렸다. 그는 전쟁이 남긴 비극을 보면서 가슴을 쳤다. 어떻게든 빨리 전쟁을 끝맺고 다시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단죄하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전쟁이 부른 상처를 털어 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한국이 해방되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벌어진 부정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작은 친일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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