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8:02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일행은 임시정부 앞에서 경위대 해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이범석 장군과 마주쳤다. 이 장군은 자신도 임시정부의 정치싸움에 지쳐 시안으로 떠났다면서 미군과 합작해 한국침투작전을 준비 중이니 시안으로 같이 가자고 권했다. 일행은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뛸 듯이 기뻐했다. 드디어 일본군을 멸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솟구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장준하는 김구 주석을 찾아 동의를 구했다. 김 주석은 일행이 시안으로 떠나는 것을 두 손 모아 환영했다.
장준하 일행은 시안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였기 때문에 신분도 감춰야 했고, 지금까지 썼던 이름도 바꿔야 했다. 장준하와 김준엽은 믿을 신(信)자를 돌림자로 써서 각각 김신철, 김신일로 이름을 지었다. 결의로 맺은 의형제 같은 이름이었다.
장준하는 시안으로 떠나기 전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들렀다. 수용소에는 누더기 차림의 포로 350여 명이 수용돼 있었다. 일본군들은 굶주린 표정으로 연합국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쳤다. 중국군을 향해 상반신을 굽실거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처지가 바뀌니 말과 행동이 변했다. 일본군들은 중국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다. 길에서 중국인을 발견하면 꿩이나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처럼 방아쇠를 당기며 웃곤 했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되니 악랄했던 얼굴을 감추고 중국군의 눈치 살피기 바빴다. 일본군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전쟁이라는 극악무도한 만행과 살육이 고귀한 인간성마저 비참하게 말살해 버린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장준하는 동정심과 증오심이 교차된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김구 주석이 장준하에게 편지를 보냈다. 세계기독교선교회에서 일하는 데커 박사와 만나 광복 후 한국기독교 재건문제를 상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장준하는 통역을 맡은 김규식 박사와 동석해 데커 박사를 만났고, 이들의 면담은 타임지를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됐다. 일제는 한국 기독교를 탄압했다. 천황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라는 신권주의와 만인평등을 외치는 기독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자 일제의 속박은 극에 달했다. 교회의 예배는 물론 성경을 금지했고, 종교 지도자들을 감옥에 가두면서 기독교는 말살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기독교 신앙에 몸담으면서 기독교는 독립운동의 가장 큰 세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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