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7:58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팬즈 박사는 장준하와의 약속을 지켰다. 며칠 뒤 제2지대 광복군에 복리기금이 도착했다. 이범석 장군은 크게 기뻐하며 장준하를 달리 봤다. 이 장군은 복리기금으로 군인들 숙소로 쓰던 허름한 절간을 개조했다. 또 예배당과 오락실, 휴게실 등도 설치해 광복군뿐만 아니라 외부 손님들과의 모임장소로 이용하도록 했다. 숙소 한편에는 <제단> 편집실도 마련해 장준하의 잡지 발행을 도왔다.
이범석 장군 전속부관으로 활동하던 김준엽이 급하게 장준하를 찾았다. 김준엽은 이 장군의 여비서와 사랑에 빠져 괴로워했다. 꿈틀거리는 감정이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는 광복군 내에서 여비서를 흠모하는 사람이 많아 시기의 대상이 됐고, 조국 독립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 연애질이나 하고 다닌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여비서는 김구 주석의 판공관실 민필호의 딸이었다. 장준하는 김준엽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서로 진심으로 흠모하는 것을 알아챘다. 성적 충동에 이끌린 욕정이 아니라 순정 어린 애정이었고, 일시적인 외로움을 해갈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끝없는 사랑이었으며,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주려는 연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장준하는 가혹한 전쟁 때문에 사랑마저 거부하고 정신적인 불구자처럼 사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김준엽에게 결혼을 주선했다. 두 사람에 대한 비소가 불쑥불쑥 나올 때는 애초부터 싹을 잘라버리는 게 나았다. 그는 개별적으로 동지들과 접촉해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주자는 여론도 형성했다. 두 사람은 장준하의 노력 끝에 모든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친구이자 평생 동지였던 장준하가 맡았다.
장준하는 김준엽으로부터 이범석 장군의 의중도 전해 들었다. 이범석 장군은 장준하를 국내침투공작에 들여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장군은 장준하에게 기대가 컸다. 조국에 장준하를 보내면 십중팔구 죽을 게 뻔했다. 전쟁 중에 장준하 같은 영특한 인재를 길러내긴 어려웠다. 사사롭게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도 않았고, 겸손하고 공정한 성품이라 지휘자로도 손색이 없었다. 광복 이후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장준하가 허망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국내침투공작은 피값을 요구하는 전술이었다. 국내에서 수집한 정보를 송신하고,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모아 유격대를 조직하고, 일본군의 군사시설에 잠입해 파괴하고, 후방에서 교란작전을 펼치며 미군의 한국 상륙작전을 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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