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6:54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1967년 6월 8일 국회의원 부정선거가 정국을 강타했다. 박정희는 행정시찰을 명목으로 민주공화당 지방유세전을 전개했고, 국가기관부터 일선 공무원까지 총동원해 여당의 선거운동을 펼쳤다. 신민당은 대통령과 공무원의 불법 선거운동을 고발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투표 당일 선거 부정은 더했다. 공개투표, 대리투표, 환표(표 바꿔치기), 무더기투표 같은 광범위한 부정이 저질러졌다. 개표결과는 뻔했다. 공화당은 의석수의 3분의 2 이상인 총 129석을, 야당은 45석을 얻었다. 박정희가 부정선거를 계획적으로 벌인 이유는 3선 개헌 때문이었다. 개헌 가능 의석은 117석이었다. 신민당을 비롯한 야권은 6.8선거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부정선거관계 공무원들을 고발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장준하는 선거법위반으로 구속 상태에서 동대문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사상계>에서 손을 떼고 동인 중 한 명인 부완혁에게 <사상계> 발행을 맡겼다. 장준하는 재야세력과 함께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3선개헌안을 통과시키면서 민주주의를 깔아뭉개고 영구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장준하는 대학생들과 민족학교를 세우고 노동자, 농민, 서민 등 기층이 함께 움직이는 새로운 민중운동을 전개했다. 또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젊은 문인들이 주도하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제의받았다. 재야 세력들이 장준하를 박정희의 저격수이자 천적이라며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 그는 출마를 한사코 사양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박정희는 속이 타 들어갔다. 지식인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신에게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온 그가 눈엣가시였다.
장준하는 잠시 정계를 떠나 「돌베개」를 집필했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친일파들이 한국사회를 주무르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특히 일본군에 입대해 침략전쟁의 일원으로 일본 천황에 충성하다 해방 후 탈을 바꿔 쓰고 가짜 독립운동가 행세를 했던 일당을 고발하기 위해서였다. 독재망령에 빠진 박정희를 비롯해 한국군의 주요 요직을 독차지한 군장성들과 경찰 간부들이었다.

'책 > 칼로 새긴 장준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42 - 장준하 일대기 128. 한국 사회 이끈 희대의 정론지 - 함석헌 목사와 <사상계> (1) | 2026.08.25 |
|---|---|
| 143 - 장준하 일대기 129. 친일의 대부 - 5.16쿠데타 그리고 탄압 (0) | 2026.08.25 |
| 145 - 장준하 일대기 131. 민족통일운동에 앞장선 장준하 - 7.4남북공동성명, 통일운동 (0) | 2026.08.25 |
| 146 - 장준하 일대기 132. 대통령 긴급조치 1호 - 민주화운동 그리고 투옥 (0) | 2026.08.25 |
| 147 - 장준하 일대기 133. 자주, 민주, 통일의 선각자 - 장준하의 그 길 (0) | 2026.08.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