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25. 16:45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약사봉 계곡 암벽 아래로 떨어졌다. 산악회원들이 점심을 준비할 사이 잠깐 주위를 둘러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던 그가 얼마 되지 않아 싸늘한 주검이 됐다. 산악회 일행 중 김용환이 장준하 선생과 동행했다. 김용환은 장준하 선생이 계곡 아래로 추락한 사실을 회원들에게 알린 뒤 12시간 동안 잠적했다.
시신을 검안했던 의사는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두개골이 함몰됐다는 소견을 내놨다. 하지만 장 선생의 시신을 사고 현장에서 운구했던 백기완 선생의 생각은 달랐다. 절벽에서 떨어진 시신이 너무 멀쩡한 점, 후두부에 등산용 피켈로 찍힌 것 같은 함몰상이 있는 점, 검안 때 시신 두 군데에 주사 자국이 발견된 점을 예로 들며 실족사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주검을 목격했던 다른 사람들도 암살을 눈치챘다. 그러나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시국이 긴박하고 살벌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대로 끌려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당시 <동아일보> 성락오 기자는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잡혀가고 말았다. ‘야당 지도자의 괴사’라는 기사를 쓴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 로이황 기자도 똑같은 이유로 해외 추방되면서 의문사 논란은 일단락됐다.
2012년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이장됐다. 두개골에는 당시 검안했던 의사의 소견과 일치한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추락사한 유골이라고 보기엔 골절이 한정돼 있었다. 두개골과 엉덩이뼈에만 골절이 있었다. 추락사할 경우 머리를 지탱하는 목뼈, 어깨뼈, 척추, 갈비뼈 골절이 동시에 발생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함몰된 두개골의 모양도 특별했다. 테두리가 선명한 원형이었다. 둔기로 심하게 얻어맞아 구멍이 생긴 게 아니라면, 이미 죽은 뒤 계곡 아래로 던져진 게 아니라면, 나타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장준사 실족사의 목격자 김용환의 진술은 계속 달라졌다. 1975년 당시에는 장준하 선생이 소나무를 붙잡고 내려오다 추락했다고 말했다. 1988년 재조사 때에는 소나무를 잡았는지, 잡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고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는 소나무를 본 적도 없고, 소나무 얘기를 지금껏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건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한 진술도 조사 결과 모두 새빨간 거짓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의문사의 진실은 수수께끼로 남았다.
장준하 선생은 실족사였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를 죽인 사람은 혹은 비밀조직은 과연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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