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 장준하 일대기 074. 꺾이지 않은 의지 - 이간공작

2026. 8. 25. 18:30ㆍ책/칼로 새긴 장준하

일본군 폭격기가 격추된 뒤 더 이상 폭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장강도 세상 모든 것을 잊은 듯 잔잔한 풍랑을 일으키며 아래로 흘렀다. 장준하 일행은 모처럼 찾아온 평화를 즐겼다. 평온한 휴식을 취하면서 야윈 몸도 빠르게 회복됐다. 퉁퉁 붓고 근질근질했던 발가락도 진정됐다.


충칭으로 가는 비행기를 구해준다는 소대장이 십여 일이 지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장준하는 소대장을 찾아가 연유를 물었다. 전쟁 중에 중국군의 비행기를 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십분 이해하는 태도로 말했다. 소대장은 다른 얘기를 꺼내며 그의 입을 막았다. 충칭에 가지 말고 제1지대에 남아 함께 싸우자고 그를 설득했다. 소대장은 한국광복군 중 공산당 노선을 취하는 약산 김원봉의 부대였다.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 기관을 파괴했고, 요인암살 같은 특수임무를 도맡아 했다.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과 조선민족혁명당을 이끌면서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했다.


장준하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공산당은 자신과 맞지 않은 사상이었고, 일본군을 탈출한 목표도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소대장의 공작 때문에 많은 시일을 소비한 게 안타까웠지만 일행의 건강이 원상 복귀된 것으로 위안 삼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라오허커우에 머물던 기간이 크게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소대장이 장준하 일행을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중국 관내에서 50여 명이 넘는 분대 하나를 만들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그것도 대학까지 다닌 지식인들로 구성된 학도병들을 모으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일행 모두 한 소대를 이끌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견식이 충분한 장교들이었다.


소대장은 장준하 일행을 포섭하기 위해 집요하게 설득했다. 설득이 먹히지 않자 개별적으로 일행을  만나 와해시키려는 공작을 펼쳤다. 단 한 명이라도 제1지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간질을 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말로 일행들의 관계를 뻐그러뜨리지 못했다. 일행 모두 처음 마음먹었던 그대로 충칭으로 가길 원했다.


장준하는 서둘러 라오허커우를 떠날 채비를 했다. 그전에 해결할 숙제가 하나 있었다. 파촉령을 넘기 위한 준비였다. 파촉령은 새도 넘기 힘들다는 고개였다. 식량과 장비를 구할 노잣돈이 꼭 필요했다. 장준하는 당분간 라오허커우에 머물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