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1932년 식민지 만주국을 세우고 수도를 장춘시로 정한 뒤 조선인과 중국인을 차별적으로 통치했다. 1938년에는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해 강제로 군대와 공장 등에 동원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큰아들, 창주는 일제의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전쟁터에 끌려가면 일본군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정수는 창주에게 상해로 건너가 숨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창주가 없어지면 집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고초를 겪었다. 이정수 본인이 창주 대신 전쟁터에 끌려갈 수도 있었다.
이정수는 충혈된 눈으로 연주를 바라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듯했다. 이정수의 아내는 답답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삐죽거리며 명령조로 연주에게 말했다.
“니가 형 대신 일본군 하면 안 되겠니? 사례를 하겠다마. 돈. 댕겨 오면 결혼도 시켜주고, 가게도 열어주고.”
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만 멍하니 응시했다. 한참 무겁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그의 가슴속에 그나마 남아 있었던 소소한 감사와 자잘한 애정은 스멀스멀 사라져 갔다. 가족에게 가졌던 일말의 기대조차 부끄럽게 여겼다. 연주는 가족에게 이용당하다가 잊히기 전에 자기가 먼저 헌신짝처럼 가족을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창주는 집안의 불행을 자신이 모두 껴안겠다는 일념으로 징병에 응했다. 이후 그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탈영을 했다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창주는 해방이 된 뒤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연주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마자 결단을 내렸다. 가족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연주의 마음속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됐다. 슬픔, 분노, 두려움, 절망이 꿈틀거렸고, 정말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떠날 수 있을지 걱정했다. 하지만 더는 이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살아남을 자신도 없었다. 연주는 어두운 새벽. 틈틈이 모아둔 노잣돈을 바지춤에 꼭꼭 감추고, 옷보자기 하나 걸머진 채 집을 떠났다. 가족들에게 그 흔한 작별 인사조차 남기지 않고 조선으로 향했다. 가족이지만 가족 같지 않았던 사람들. 떠난다고 해도 붙잡지 않을 것이고,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아무 일 없이 살아갈 사람들과의 작별 인사는 무의미했다. 품삯 한 푼 없이 식당에서 일했던 그동안의 노고 정도면 키워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충분했다.
그날 이후 장춘 창장로 국밥집에서 일하는 연주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드리워져 있었다. 이름도 사라지고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가 자라면서 겪은 아픔만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영령처럼 맴돌았다.
연주는 평양으로 향했다. 조선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무작정 평양을 목적지로 정했다. 장춘에서 선양, 단둥을 거쳐 평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연주는 경비를 아끼려고 간간히 차를 얻어 타며 온종일 걸었다. 식사는 간단히 고구마로 때웠고, 하늘을 지붕 삼아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육이 지쳐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숙소가 딸린 주막에서 잠시 여장을 풀었다.
장춘을 떠난 지 십일 만에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에 도착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중국말이 아니라 조선말을 했다. 말로만 듣던 조선 땅이었다. 연주는 살아생전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언제 어디에서나 조선말이 들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눈물이 한가득 고였다.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연주는 선천에서 정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주막에 며칠 머물기로 했다. 식량도 마련하고, 옷도 세탁하면서 여로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얼마나 헤매고 다니며 고생했는지 여지없이 거지꼴이었다.
연주는 주막에 머문 첫날 밤 따뜻한 음식을 먹고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가 따끔거리는 통증에 잠에서 깼다. 침구에 서식하는 진드기에 물려 극심한 가려움을 느꼈다. 연주뿐만 아니라 큰 방에서 함께 자던 사람들 모두 옴이 올라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긁었다. 손가락 발가락 사이, 겨드랑이, 사타구니 같은 연한 살이 짓무르며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은 침구를 밖으로 내놓고 방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마당에서 발가벗고 폴짝폴짝 뛰면서 옷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주막 주인장이 준 노루발풀액을 온몸에 바르고 알몸으로 잠을 잤다.
★
연주는 평양에 도착한 뒤 작은 문간방을 얻어 잠자리를 마련하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배운 게 없고, 변변한 기술이 없어 일은 대부분 막노동이었다. 페인트칠도 하고, 삽질도 하고, 목수도 하고, 모래도 나르며 기술을 익혔다. 어깨너머로 배운 도둑일 치고는 쓸모가 있었다. 이때 일하면서 배운 기술들은 연주가 평생 생계를 이어가는 토대가 됐다. 특히 정미소에서 쌀가마를 옮기며 기계를 돌렸던 경력은 후일 방직공장에 취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연주가 정미소에 취직한 건 전적으로 정미소 사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동네에서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청년으로 인정받으면서 정미소 사장이 먼저 연주를 찾아와 일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주는 일꾼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우스갯소리를 자주 해 재밌었다. 성미는 호방하고 활기찼으며, 외모는 훤칠했고, 거뭇한 면도 자국과 점잖은 구레나룻이 남성미를 물씬 풍겼다. 정도 많고 마음 씀씀이도 따뜻했지만 바보스러울 정도로 남의 꾀에도 잘 넘어가 돈도 많이 떼였다.
정미소 일은 신났다. 떠돌이 생활을 끝낼 수 있는 정규직이었고, 기본적으로 일머리도 있어서 기분 좋은 칭찬을 자주 들었다. 연주가 더욱 신났던 이유는 정미소 사장의 막내딸 때문이었다. 막내딸의 얼굴은 희고 살결은 부들부들 예뻤다. 마음씨는 그다지 곱다고 볼 수 없었지만 손끝이 야무져 집안일을 똑소리 나게 했다. 연주는 막내딸을 좋아하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장난스럽게 결혼하자는 말도 자주 했지만 실제로 결혼이 성사될 것이라고 믿진 않았다. 무일푼 고아에겐 언감생심이었다. 막내딸도 무서운 아버지 밑에 자란 탓에 불장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미소 사장은 막내딸을 좋아하는 연주의 의중을 눈치채고 야박하게 대못을 박았다. 두 사람의 결혼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면서 다른 마음을 품으면 당장 해고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집안끼리 혼사를 논하던 시절, 얼굴도 모르는 사내에게 딸을 시집보내던 때였다. 두 남녀가 아무리 좋아해도 양가 부모들의 허락 없이 결혼은 불가능했다.
연주는 몇 달 후 자진해서 정미소를 그만뒀다. 새로운 삶을 찾아 따뜻한 남쪽으로 길을 재촉했다. 어차피 부모형제 없는 혈연단신.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데로 가면 됐다. 연주는 조선의 제일 곡창지대로 꼽혔던 전라남도 나주로 향했다. 정미소에서 배운 기술이 가장 잘 먹힐 곳이었다.
사실 연주가 정미소를 그만두고 나주로 급하게 떠난 이유는 군대에 가기 싫었고,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을 혐오해서였다. 자기가 고아가 된 이유도 전쟁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해 도망치듯 전라도로 향했다.
해방 후 이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 정권이 수립됐고, 세금 납부와 징병을 위한 호구조사가 대대적으로 실시된 뒤 연주에게 조선인민군에 입대하라는 영장이 날아왔다. 연주는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전쟁이 두렵고 무서웠다. 장춘에서 자라는 동안 사람들이 총칼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전쟁에서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짐승다움만 요구했다. 승리와 군림을 위한 내핍과 고통, 잔인과 굴종, 죽음과 절망을 강요했다. 인간의 생명도 개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굶주림조차 달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살점이었다.
연주가 정착한 곳은 나주가 아니라 광주 송정리였다. 밤에 환하게 켜진 홍등가 불빛에 반해 송정리에 머물렀다. 송정리는 1913년 기차역이 생기면서 상업 중심지로 떠올랐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오까야마, 도야마 같은 호화 여관이 들어서고 가모가와, 아사히, 요시미아 같은 유곽과 식당, 선술집, 다방 등 유흥가가 밀집하면서 일대 환락가를 이뤘다.
오늘날 송정리에는 고려인 마을이 형성돼 있다. 1860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을 이유로 구소련·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하나둘씩 송정리에 자리를 잡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연주 역시 고려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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