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음악, 영화 '매트릭스', 김영하 소설 '빛의 제국' 등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무엇일까? 답은 바로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다. 그의 작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분야에 인용됐으며,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그리트는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이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그의 예술을 대표하는 수식어다.
르네 마그리트는 1910년 보자르 아트 아카데미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하면서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지만 1920년 중반 로르조 데 키리코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의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운동이다. 꿈과 무의식의 세계로 이성에 속박받지 않는 인간 정신 해방을 목표로 했다.) 그는 당대의 초현실주의자들이 보여주었던 자동기술법이나 편집증적인 추상화에서 벗어나 사과, 돌, 새, 벨 등 사람들에게 친숙한 사물을 오브제로 사용했다. 또 마그리트는 화면에 여러 가지 대립되는 요소를 함께 그려 넣거나 엉뚱하게 조합해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이용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매우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화가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생각이 있고 상식을 넘어서는 창의성과 새로운 관점이 있다.
1950년대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에서 벗어나 인상주의와 바슈(포비즘(야수주의)의 포브(야수)를 패러디한 것) 시기를 거친다. 그러나 마그리트는 다시 초현실주의로 돌아서서 1930년대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던 주제와 이미지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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