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단에서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고영훈이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집요하게 '돌'에 매달려오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공적으로 그려낸 돌이지만,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진짜 돌로 보이게 해 사람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남겼다.
고영훈 작가는 1970년대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운 돌을 허공에 띄웠다. 이후 80년대에는 펼쳐진 책을 캔버스에 가득 채우고 신비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돌을 오브제로 그려 넣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돌 대신에 깃털, 도자기, 꽃, 날개, 사진 등의 오브제를 나열하면서, 각각의 오브제들을 돌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는 시도를 했다. 우리의 주변에 있는 오브제들을 서로 경쟁을 시키듯이 더욱 리얼하게 배치하거나, 작품에 직접 오브제를 삽입하면서 작품과 사물의 간격을 허물었다. '오브제'는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와 관계없이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도록 하는 상징적인 물체를 말한다.
고영훈 작가가 오브제에 집중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는 갖가지 오브제로 문명 세계에서 미술이 발상하게 된 이유를 반추했다. 인간의 삶과 시간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고영훈 작가의 작품은 실물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묘한 환상성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실재적인 사실이 도리어 비현실성을 내포한다는 것. 그는 작품을 통해 현실이 허구일지도 모르며, 우리가 알고 있는 허구가 실재일 수 있다는 중의적인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작품은 또 돌이 담고 있는 애니미즘, 샤머니즘을 떠나 실재 사물이 가지고 있는 허구성을 드러내는데 주력했다. 이 또한 극사실주의로 사물을 실재화하고, 거기에서 탈실재화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고영훈표' 작품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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