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팔공산 - 자연의 온기를 팔고 사는 세상

이동권 2022. 7. 31. 18:10

팔공산 장승


대자연으로 가는 길에서는 항상 마음이 숙연해진다. 혼탁한 일상을 모두 떨쳐내고, 곪아 터진 삶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일 테다. 나는 오늘도 머릿속에서 부서지는 수많은 사유를 떠올리고, 속절없는 세상의 꿈을 조심스럽게 베어내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이곳도 역시 각종 편의시설과 위락시설이 나를 가장 먼저 반긴다.

 

산을 유유자적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암벽을 타거나 야영하면서 산에 푹 안긴다. 산이 좋고, 산에 가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딜 가나 돈 냄새가 풀풀 풍긴다. 산도 마찬가지다. 유원지가 들어서고, 유흥업소가 세워지고, 거기서 떠들썩하게 놀기 바쁜 사람들이 돈 냄새를 풍기며 산을 찾는다.

 

마음을 내려놓는다. 이런들 어떠하랴. 산이 모두 보듬어 줄텐데.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양심을 거세하며 산다.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자연의 온기마저 팔고 산다. 소유하지도 않은 물과 공기, 하늘마저 값을 정하고, 판을 벌린다. 우리는 사유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이며, 거룩하고 신성한 기억들로 채워져야 할 삶의 태반이다. 

팔공산은 암벽 틈 사이로 숭숭히 자란 침엽수림이 신묘한 형상의 기암괴석과 능선을 타고 펼쳐진 산이다. 등산로를 따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기묘한 엇갈림과 부대낌, 정처 없이 부서지는 태양의 여운을 간직한 크고 작은 봉우리들, 인간의 마음과 같이 가파르고 완만하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움이 등산객들의 정신을 빼앗기기 충분한 곳이다.

팔공산은 해발 1,192m 비로봉을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죽순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동봉(해발1,155m)과 독야청청 푸르디푸르게 솟아오른 침엽수림의 서봉(해발1,041m)을 친구 삼아 병풍처럼 뻗었다. 산수 곳곳마다 유서 깊은 사찰과 유적, 국보급 보물들이 팔공산의 역사적 깊이를 더한다.

팔공산의 등산로는 단조롭고 편해 보이지만 실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수월치 않다. 특히 겨울에 바위, 골짜기, 능선은 빙판길이 되어 운신하기가 아주 힘들어 아이젠과 로프 등으로 무장해야 한다. 

팔공산은 신숭겸 장군이 왕건의 갑옷과 말을 타고 적들을 유인해서 왕건을 살려낸 일화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가 후백제(견훤)의 공격으로 경주를 점령당했을 때, 왕건이 신라를 돕기 위해 진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의 왕건이 공산에서 견훤의 계략에 휘말려 위급함에 빠졌고, 여덟 명의 장군은 왕건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원래 이 산의 이름은 공산이었으나 이때부터 여덟 명의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여덟팔(八)자를 앞에 붙여 팔공산이라고 불렀다.

팔공산은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대구 지역의 최고 명승지가 됐다. 동봉 아래에서 팔공산 스카이라운지까지 올라설 수 있는 케이블카와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보는 산자락, 기암괴석, 사찰, 대구 시내의 정경은 유려하고 감명 깊다. 이 산은 대구분지 북쪽을 항아리처럼 둘러싼 형상이 수호신처럼 대구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수많은 불교유산의 본산지로 시민들의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고 있다. 동화사에서 구룡사 삼거리까지 수려한 경관을 따라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코스도 팔봉산 관광의 묘미를 더욱 살린다.

 

통일대불과 동화사


동화사는 팔공산의 남쪽 산자락, 대구시 도학동에 자리 잡은 고고한 사찰이다. 동화사 주차장을 지나 1만여 평의 대도량으로 올라서는 108계단은 백팔번뇌를 끊고 올라서는 중생의 염원을 간직하고 있다. 동화사라는 이름은 경내에 오동나무 꽃이 겨울에도 피어올랐다 해 갖게된 이름이다. 이곳은 차고 맑게 휘돌아 나가는 계곡과 하늘을 빼곡히 채운 푸른 침엽수, 자연이 선사하는 예스러운 바람이 운치를 더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또 국보급 보물로 지정된 마애불좌상, 당간지주, 금당암 3층 석탑이  그윽한 옛 사찰의 분위기를 만들며 수려한 풍광을 연출한다.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세계 최대 규모의 동화사 통일대불도 볼만하다. 통일약사대불은 좌대가 13m, 불상이 17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불이다. 108명의 석공이 7개월 동안 만들었다고 하며 장대하면서도 부드러운 매력이 넘쳐 예술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높이가 3m가 넘는 보물 제254호인 동화사 당간지주는 화려하거나 멋스러운 모습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장중하고 견실함이 느껴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부서져 어떤 모습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당간을 고정하는 간과 직사각형의 간구, 주연의 모서리, 세로 능선을 면밀하게 관찰해보면 그 견중함은 대단하다.

관봉의 갓바위(관봉 석조여래좌상)는 해발 850m 관봉 정상에 갓을 쓴 것처럼 머리 위에 돌을 올리고 당당하게 정좌해 있는 높이 4m의 거대한 불상이다. 이곳은 약사여래 신앙의 총 본산지로 김유신 등의 신라 화랑들이 수련하고 기개를 키운 곳으로 유명하다. 삶의 기원과 희망을 품은 좌상으로 알려져 있어 매년 1월 1일이나 입시철에 가족의 건강과 행복, 입시 합격을 염원하는 수많은 신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동화사는 불성을 포교하는 도량 넓은 수제자와 승려를 키워내는 불교 강연, 고려 시대의 유고한 사찰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부인사, 파계사와 부도, 양진, 염불, 거조, 백흥, 운부, 묘봉 등의 50여 개 암자로 유명하며, 부처님의 진산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우리나라 제일의 불교성지로 불리며 위엄을 떨치고 있다. 

1박 2일로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등반하길 추천한다.